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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거인/소교리문답

24.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

우리의 왕되시며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 이시간 주의 자녀들을 주님의 존전 아래에 불러 모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일주일 동안 가정과 학교와 직장에서 흩어져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수종들며 순종하며 살아가게하시다가 이시간 복된 날 맞이해서 영원한 새하늘과 새땅에 예표가 되는 이자리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기뻐하며 즐거워 할 수 있는 복된 자리에 초대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돌아보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아닌 것이 없지만은 우리가 은혜를 잊고 살았던 부분들이 있다면 이시간 다시 한번 용서해 주시고, 우리의 입이 만개가 있다 할지라도 다 찬양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대해서 다시한번 돌아보며 다시한번 감격해 하며 다시한번 감사할 수 있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해 주옵소서. 

우리주님의 보혈로 말미 암아 우리의 죄가 씻김을 받고 영원한 지옥의 형벌 가운데에 건짐 받게된 이 크고 놀라운 은혜에 대해서 이시간 입술을 크게 벌려 찬양하며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어 하나님을 노래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시간도 우리의 어두워진 눈과 닫혀진 귀와 단단해진 마음이 있다면 주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의 눈과 마음의 귀를 열어주셔서 하나님 말씀을 더 잘 보고 더 잘 듣고 더 잘 깨달을 수 있는 복을 얻게 해 주옵소서. 

그리하여 이시간 다시 한번 우리의 전부를 가지고 전 존재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응답하며 하나님을 알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순종을 다짐 할 수 있는 귀한 자리가 되게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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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전서 1장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서론 

오늘 함께 생각해보려고 하는 하나님말씀의 주제는 왜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데 왜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 하는 것입니다. 그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동일하게 똑같은 시간과 똑같은 장소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왜 그 복음을 듣고 어떤 사람들은 그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왜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믿지 않고 거절하고 그래서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은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혹시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고 한다면 여러분 어떻게 해서 이와같이 놀라운 구원을 얻게 되었고 또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일 까요?

한번 스스로 마음속으로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된 것은 전적으로 100%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은혜때문입니다. 오직 은혜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이렇게 예수님 믿게 되고 또 예수님 믿게 됨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예수님 믿고 구원 받게 된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셔야 하고 제가 이 모든 일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하실분도 있을 것이에요.
 
그런 분들은 복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생각을 해보세요. 나는 복을 받은 사람인가 그런 사람은 복이 있어요.
 
근데 어떤 사람들은 혹시 이런 사람있을 지 모르겠어요. 물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저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을 저 대신에 십자가에 못박게 하셨지만은 결국 제가 믿은 겁니다. 하나님 저 똑똑 하죠. 상당히 똑똑하지 않습니까? 제가 이걸 믿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의지의 결단을 가지고 제가 예수 믿기로 선택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 은혜도 감사하지만 저도 상당히 보면 괜찮은 사람 아니겠습니까? 하면서 하나님께도 감사를 드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절반의 그런 굉장히 대견스러워 하는 이런 분이 혹시 있어요?
 
절반의 복이 있을 것입니다. (웃음)
 
근데 어떤사람들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의 은혜요? 저는 없습니다.  저는 제가 예수님 믿기로 결심을 했고 지금 이렇게 예수님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적으로 자기가 예수님 믿고 구원 받게 된 것이 자기자신의 이런 의지와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절반의 복도 없을지로다!!(웃음)
 
문제가 있는 생각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사실 여러분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던지 간에 오늘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왜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게 되는데 어떤사람은 믿지 않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잠깐 살펴 볼까요.
 
 고린도 전서 1장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여기에 보면 어떤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멸망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이래요.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이렇게 말하고 있죠. 그래서 이렇게 구원받기 위해서는 21절이 필요합니다.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는데 무엇을 사용하신다구요? 전도의 미련한 것이라는 것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할때는 이 전도를 통해서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이전도 속에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내용들을 어리석게 생각한다는 사실인데 하여튼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구원 받을 사람들에겐 전도를 통해서 전도를 통해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고 하면 순서가 있는데 그 순서는 무엇인가 하니깐,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 해요. 우리죄를 회개 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야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겠죠.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 9장 10절에 보게되면

 '네가 만일 네 이름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누가 구원 받는다구요? 예수가 주님이신것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시고 부활하신 이 놀라운 복음의 사실을 마음으로 그가 믿고 우리의 입술로 내가 믿는다고 확실하게 자신의 믿는 바를 신앙으로 고백하는 그런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구원 얻는 다른 길은 없어요. 우리가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우리죄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 하셨다고 하는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시요. 우리의 주님이시요. 우리의 구세주시요.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는 사람만 입술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통해서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믿는 사람들만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이야길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누군가가 그 예수님을 그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되죠? 전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그사람이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 믿음을 발휘해서 예수님을 믿겠죠. 또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겠죠.
 
그래서 예수님 믿어야 구원을 받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구원 하시려고 할때 그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사람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서 로마서 10장 13절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게 아까 그말이에요. 우리가 입술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믿어 구원을 얻는 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일을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 받는 다면 우리가 믿기 위해서는 전하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전도자를 보내시는 것이에요. 복음을 전합니다.
 
- 전도란 무엇인가?

그런데 문제는 이 복음을 전할때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이죠. 여기서 복음을 전한다는 말은 뭔지를 생각해 봅시다. 어떻게 하는것이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에요?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복음 전도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전도는 뭐를 전하는 거죠? 복음을 전하는 것이에요. 복음은 에수님이니깐 예수님을 전하는 건데 무엇을 전해야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조주시라는 사실을 분명히 전해야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분이시고,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왕이시라는 이사실을 분명하게 전해 주어야 하는 것이에요. 우린 하나님의 종으로 지음받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전해줘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중요한 본분이라는 사실을 첫번째로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전도는 뭘전하는 것이라고요?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하나님이 우리의 왕되심과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알려서 우리 인간의 마땅한 본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먼저 알려줘야 하는 것이에요.
 
두번째 그런데 아담이 우리 인간에 대표로서 하나님께 순종을 하는 그 일에 실패 했다라는 사실을 알려줘야 하는 것이에요. 아담이 죄를 지었고 우리또한 아담의 후손으로서 지금은 죄를 지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못했고, 하나님께 순종하지도 못한 하나님께 반역자라는 사실도 알려 주어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지금 예수님을 믿고 있지 않는 당신의 상태는 바로 하나님 앞에서 반역자에요.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그러한 자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 주어야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 반역죄를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길을 보여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보내어주셔서 예수님께서 우리죄를 대신해서 하나님앞에 반역한 죄 값을 다 지고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다 지불하셨다고 하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다고 하는 이 십자가의 도 십자가의 진리를 전해 주어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복음을 전한다고 할때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려줘야 하는 것이에요.
 
1.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
2. 우리의 죄인됨.
3.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세주 되신다는 사실.
 
이것들을 분명하게 전하는 것을 복음을 전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믿는 사람들에게 따르는 약속도 알려줘야 겠죠. 여러분이 이 복음을 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한 선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당신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영생을주셔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주실 것이라는 예수믿고 난 다음에 생기게 될 엄청난 복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반대로 예수님을 믿지 아니했을때는 정반대로 당신은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와 심판을 받아서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지게 될 것을 알려 주어야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렇기때문에 당신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는 것보다 더중요한 일은 당신에게 없다고 그렇게 간청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당신이 무엇을 이세상에서 성취하려고 하기 이전에 예수믿고 구원받는 일이 당신의 일생일대에 가장 중요한 것이니깐 다른 것 다 내려놓고  빨리 예수믿고 구원얻기를 힘써라.
 
이렇게 간청을 해야 되는 것이에요. 이것을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라 그렇게 일컫는 겁니다.

- 복음 전도에 대한 오해 -1 
 
근데 우리가 전도를 할 때 어떤 사람들은 전도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게 뭔가 하니깐, 내가 이복음을 전했을때 상대방이 내가 전한 이 복음을 듣고서 이제 회개하고 예수믿겠다고 하면 내가 그사람에게 전도를 했다. 이리 생각하고 내가 복음을 전했는데 그사람이 예수를 안믿으면 아직 내가 그사람을 전도 못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그사람이 믿던지 안믿던지 그것은 그사람의 문제이고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내가 바르고 정확한 내용을 가지고 그에게 방금말한 이 복음의 내용을 알려주는 것이 전도에요. 그 사람이 믿는 것 까지가 전도가 아니에요. 믿고 안믿고 이전에 그사람에게 복음을 바르게 알리는 것까지를 전도라고 하는 것이에요.
 
만일 그 사람이 믿고 예수님을 영접한것까지를 전도라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은 전도의 실패자에요. 예수님이 복음을 전했을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전도를 받고서 안믿었어요. 예수님이 3년 반동안 이동네에서 저동네로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했지만 예수님이 복음 전한것 듣고 믿는 사람은 극소수 였어요.
 
예수님은 전도의 실패자가 될 것이에요.
 
예수님이 이후에 가장 위대한 전도자는 사도바울이에요. 그는 예수님 믿고 난 다음에 죽기전까지 수십년간을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로마제국 전체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던 위대한 복음 전도자에요. 그런데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때도 어떤 사람들은 믿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믿지를 않았어요.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위대한 복음 전도자가 아니라 교회사에서 가장 실패한 복음 전도자에요.
 
왜냐하면 가장 많이 전했는데 가장 많은 사람이 안믿었어요. 그러니깐 확률로 따지게 되면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사실은 안믿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에요. 그러니깐 가장 형편 없는 전도자가 될 것이에요.
 
전도를 어떻게 생각하게되면? 내가 복음을 전했을때 그사람이 예수를 믿어야 내가 그사람에게 전도했다고 생각하게 되면 예수님과 사도바울은 가장 형편 없는 전도자가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교회사에 위대한 전도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마찬가지로 가장 실패한 사람이 될 것이에요. 그래서 전도라는 것은 내가 복음을 전했을때  그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것 까지가 아니고 뭐라고요? 그사람에 복음을 바르고 확실하게 그사람에게 전달해주는 것 까지를 복음 전도라 그런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전했다라고 할때는 중요한 그사람이 믿고 안믿고의 반응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내가 복음을 바르고 정확하게 전달을 했느냐 안했느냐가 전도를 했느냐 안했느냐의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지금까지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정확하고 바르게 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까? 여러분이 생각할때에 믿고 안믿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얼마나 분명하게 명쾌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다른 사람에게 이 복음의 진수를 다른사람에게 전해주었습니까?

여러분이 복음을 전해서 몇사람이나 예수님믿게 되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이 몇사람에게 복음을 전했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책임을 줄때 저사람을 믿도록 까지 하여라 그렇게 책임을 맡기신 적이 없어요.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믿던지 안믿던지 너의 책임은 분명하게 가서 알려주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믿으려고 하면 먼저 바르게 들어야 복음을 바르게 믿을 수가 있겠죠. 그래서 복음 전도는 그사람의 믿음 여부와 상관 없이 분명하게 전달해 주는 것이다. 하는 것이에요.

- 복음 전도에 대한 오해 - 2

두번째 복음 전도의 오해는 무엇인가 하니깐. 전도라는 이름으로 하긴 했는데 복음을 안전하면 복음전도가 아니에요. 예를 들어 이런거 우리가 직장에서 다른직원들과 지내면서 한번 무슨무슨교회 한번 가볼래? 우리 예수가족교회 참 좋은 교회에요. 이거 전도에요? 아니에요? 

예수가족교회가 좋은 교회라는 걸 전한 거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죽고 한 얘기는 안했잖아요. 그러니깐 전도에요? 아니에요? 전도 아니에요. 전도의 예비 단계를 한 거에요. 우리교회 오면 주일날 설교시간에 백목사님이 복음을 전해줄 것입니다. 이거죠 뭐.. 저랑 한팀이 되가지고 예를 들면 뭐죠? 흔히말하는 뭐죠? 그러니깐 여러분 그건 전도가 아니라 교회까지 와서 여기서 복음을 들으라고 내가 복음 잘 못전하겠으니깐 하여튼 복음듣기 위해서 우리교회가면은 복음을 듣게 될 것이라고 해서 복음을 듣는 자리까지 데리고 오는 것이에요. 우리교회가자고 하는 얘기는 ..

그러니깐 그것도 넓은의미로 보게되면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준비 단계이니깐, 넓은 의미로 보게되면 복음전도의 출발점이긴 하지만 그정도까지해가지고는 복음  전했다 하는 건 아니에요. 지금 복음 전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죠.

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전도집회라고 하는 전도집회를 만들어 놓고 사람들을 구름떼처럼 모았어요. 그래서 이번에 우리가 총동원전도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한번만 참석만 해주시면은 여러분에게 줄 선물이 많습니다. 이번에 500만원치 하이타이 사고 200만원치 비누사놓고 사놨기 때문에 이번에 오면 다 주니깐 한번만 시간을 내어주시면 당신 도움 될 거라고, 

이것도 전도 아니죠. 복음을 전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에요. 그리고 그날이 왔어요. 그 사람들이 뭐라도 얻어먹을까해서 많이 따라왔는데 전도집회를 할때 유명가수 불러가지고 멋진 노래 10곡 들려주고, 또 코메디언 불러서 코메디 간증 좀 들려주고 그다음에 전도 설교랍시고 하는데 그 설교가 예를 들면 예수믿으면 병있습니까? 왕창 낫습니다. 예수님 믿어보세요. 사업잘될 겁니다. 그다음에 예수믿으면 부자되고 예수믿으면 건강하게 되고 예수믿으면 마음도 평안해지고 막 좋을 거라고 이렇게 하고 전도 집회를 끈냈어요.

전도 한겁니까? 안한겁니까? 했어요? 안했어요? 안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비록 전도집회란 이름으로 사람들을 모아다가 많은 순서를 만들어서 정말 예산을 많이 들여서 많은 노력을 해서 정성을 기울여서 일년전부터 총동원전도로 해서 기도하고 이렇게 다 준비를 해서 그렇게 하긴 했지만은 전도한 것은 아니에요. 전도한 것이 아니에요.

다만 그사람에게 좋은 거 하나 약장수처럼 팔았을 뿐이지 복음을 전한것은,,, 복음이 없는데 무슨 전도에요. 복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조주라는 사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된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순종해야될 하나님의 종이란 사실을 전해 줄 수 없는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범죄해서 하나님앞에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적도 없는데 무슨 복음 전도에요.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그 죽음이 우리의 모든 죄값을 위해서 다 하나님 앞에 값을 지불했다고 하는 놀라운 사실도 전해준 적도 없는데 무슨 복음 전도에요. 그냥 예수믿으면 부자되고 잘살고 예수믿으면  마음 편하단 얘기나 했는데 그게 무슨 복음전도에요.. 복음 전한 것이 아니에요.

특별히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기를 기뻐하신다고 말할때는 이 위대한 복음의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기타 그냥 복음도 아닌 내용으로 사람들을 미혹한다든지 아니면 더 자기가 해야될 일도 아닌 그사람이 믿는 것 까지를 복음전했다고 생각하면서 자기가 복음을 전해놓고도 그사람이 안믿는 것 때문에 괜히 자기 마음속에 시험들어서 왜 너는 복음 전하면 사람들이 안믿나 내가 문제 가있어서 그런가,, 내가 말주변이 없나,, 아니면 내가 못생겼나,, 내가 뭐 죄를 지었나 왜 내가 전하면 안믿지 해서 괜히 주눅들어가지고 다음부터는 나는 절대 복음 안 전할 거야 

사람들이 전했을때  그래도 예수를 좀 믿어야 체면도 좀 서고, 적어도 한 열명 전하면 그중에 한 4명정도 10타수 4안타쯤 때려야 나도 체면이 좀 설텐데 어떻게 열명 전했는데 한사람도 안믿냐 나는 챙피해서 앞으로는 복음 안 전하겠다. 이러면 안되는 것이에요.

열명이 아니라 100명 천명 만명 100만명을 전해도 안믿어도 복음을 정확하전했으면 그사람은 복음을 정확하게 전한것으로 하나님은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전도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 복음 전도의 2가지 반응

그런데 오늘 우리가 좀 더 생각해 봐야될 점은 이렇게 분명하게 복음을 전해도 그 결과가 어떻게 된다구요? 
두가지 부류가 생긴다는 것이에요.

다시 본문을 보면.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지금 이 십자가의 도라는게 복음인데 이 복음인 십자가의 도를 전했는데 이 결과가 이 사람들이 2종류의 반응이 나오는 것이에요. 그걸 믿는 사람이 있고, 안믿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에요. 자꾸 그래서 한쪽은 뭐라고 부르고 있죠. 멸망하는 자들이라 부르고, 다른쪽은 구원 받는 무리라고 이렇게 부르는 두종류의 사람이 자꾸만 생기는 것이에요. 십자가의 도를 정확히 전했을때.

십자가의 도를 정확하게 전하지 않으면 이런것도 안생겨요. 아니 십자가의 도도 안전했는데 뭐 믿거나 말거나 할게 있어요. 그런 것도 안생기지만, 복음을 바르게 전하는 곳에는 반드시 사람들이 두패로 나뉘어진다. 복음을 정확하게 전하는 곳에는 반드시 믿고 구원받는 사람이 생기고 한쪽은 어리석어서 믿지 않고 멸망에 이르게 되는 사람이 반드시 생겨나게 된다. 

참된 복음을 전한 현장마다 사람들이 나누어지게 되는 것이에요. 

그런데 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왜 믿지 않는가 하니깐 그 복음이 어리석게 느껴지는 것이에요. 복음이 거칠어요. 듣기 싫어요. 그 복음이 자기의 귀에 들릴때 아주 안좋게 들려요. 복음은 무슨 복음 아주 형편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왜 안믿는가 하는 것이 23절에 설명이 되어있어요.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여러분 복음은 예수님을 믿지 않을 사람들에게는 아주 쓴맛이 나는 것이에요. 아주 거칠어요. 그들이 생각할때 복음은 좋은 소식이 아니라 아주 거칠은 소식으로 아주 듣기 싫은 소리로 아주 안좋은 소식으로 아주 나쁜 소식으로 그들에겐 들리게 되어있어요.

왜그런가 하니깐, 

그들이 구하고자하는 것 하고 복음이 주고자 하는 것이 달라요. 지금 유대인들은 기적을 원해요. 그리고 지혜를 원해요. 그런데 복음은 그것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를 죄로부터 구원해준다는 얘기를 전해주니깐 이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에요. 우리가 죄로부터 지옥으로 부터 사단으로부터 건짐 받고 용서를 얻는 것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에요. 지금 당장 기적이 일어나서 뭔가 자기들에게 필요한 일을 주는 것 실은 좀 달콤하게 지혜롭게 들려가지고 내 지식을 증가 시켜주는 이런 요소 이런 것을 원하는 것이지,,

무슨 우리를 죄로부터 죽음으로부터 사단으로부터,, 그 무슨 소리야 알아듣기도 싫고 알아들을 수도 없고, 그런 말은 나하고 관계없으니깐 그런소리 하지마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에요.

여러분 복음은 거친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달콤하게 들리는 것이 아니에요. 왜 그러느냐?

유대인은 기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구한다는 말을 요즘 쓰는 말로 쉽게 구하면 세상에 예수믿지 않는 모든 죄인들이 구하는 것은 부자되는 것, 잘 사는 것, 건강한 것, 오래사는 것, 마음 평안한것, 이것을 원하는데 지금 십자가의 도는 그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바로 여러분의 죄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될 여러분의 죄를 그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로부터 건져내시기위해서 죽었다고 하는 십자가의 도는 그들의 귀에는 거칠게 들리고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처럼 들리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십자가의 도 복음은 걸림돌일 뿐이지 그것이 자기들에게 받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뜻이에요. 그래서 그런 것이에요.

자신들의 관심사가 없어요. 지금 내 관심사는 지금 내가 직장에 짤렸기때문에 취업해야 되는데 내가 지금 취업이 안되가지고 일년동안 백수로 한숨 눈물 염려 보낸 세월이 언제인데 아니 당장 예수믿으면 이미 좋은 직장 들어갈거야 이런식으로 해야 귀가 솔깃 할텐데 지금 당장 백수인 사람한테 와가지고는 당신 예수 믿으면 십자가의 도는 당신을 영원한 지옥으로부터 건져줄것이고 지금 당신을 죄의 세력으로부터 사단의 세력으로 부터 그렇게 건져준다고 말하니깐 거기에 무슨 관심이 있어요. 

내가 당장 관심이 있는것은 내가 직장에 들어가는 건데 무슨 직장에 들어가는게 중요하지 내가 뭐 죄로부터 구원? 지옥으로부터 구원? 그건 나하고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고 참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운데 당신 어떤 사람이에요? 온국민들이 이렇게 경제가 어려워 가지고 전부다 고통하고 있는데 당신 무슨 소리하고 지금 돌아댕기고 있는거요. 당신 그렇게 직장이 좋아. 아니면 월급 많이 받아 당신 이렇게 해도 밥먹고 살수 있어?

아니 이런식으로 그렇게 그들은 반응을 보일수 밖에 없어요. 결혼하기를 원했지만은 결혼이 자꾸 늦어져가지고 앞에 '노'짜라는 딱지가 붙어있는 사람에게 와서는 예수믿으면 예수님하고 결혼하게 될 거라고 이러면 화가 나는 거에요 지금 아니 내가 지금 결혼하고자하는 것은 예수님이 아닌데 왜 예수님하고 결혼하나요.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은 좋은 남자 좋은 여자를 구하지 내가 언제 예수님과 결혼하겠다고 그랬어.. 당신 정신 나갔어.

무슨 예수믿으면 예수님과 결혼하게 된다고?? 예수님이 내 신랑이라고?? 

아주 어리석게 들리는 것이에요. 미련하게 들리는 것이에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게 정상인 것이에요. 이렇게 반응해야 정상인데 어떤 사람들은 지금 백수로 있는 동안에 누군가 그 얘기를 해주니깐 갑자기 마음이 녹아지면서 '그래 내가 직장도 직장이지만은 빨리 예수믿고 내 죄를 용서 받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구나 ' 해서 그렇게 예수님 믿겠다는 사람이 나온다는 것이에요. 

비록 '노'자가 앞에 달려있지만은 나중에 결혼이 되던지 안되던지 모르겠지만은  어쨋든 빨리 예수님 믿고 나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구나 이렇게 생각되는 사람이 나온다 그것이에요. 근데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그런생각을 하는 것인가? 이건 참 미스테리에요.

그래서 정신과에 데려가봐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스캔을 찍어 봐야 하는것이에요. 정밀하게 찍어서  무슨 일이 있길래 어느 부위가 활성화 되길래 도대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가를 조사를 해봐야 될 정도로 아주 이상한 사람이 생긴거 아니겠어요?

- 하나님의 부르심(내적인(거룩한 효과적인) 부르심, 외적인(복음전도) 부르심)

근데 오늘 성경은 그 비밀을 알려주는 거에요. 왜 그사람이 그런식의 반응을 하는가? 그게 바로 24절의 반응이에요.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이런 유대인이나 헬라인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죄를 회개하고 예수믿고 구원받게 한다구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자기 마음이 열려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이 나때문에 죽었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어지고 그게 받아들여지고 그게 굉장히 아름다운 소식으로 복된 소식으로 들려져서 내가 그렇게 믿고 싶다고 하는 마음이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이에요.

그런데 성경이 말하기를 그런 사람은 아이큐가 좋아서라거나 원래 태생이 착해서라거나 그런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을 하는 것이다. 하는 것이에요.

근데 좀 더 이제 넓게 말하면 사실은 안믿는 사람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긴 받았죠. 예수 믿으라고 하는 부르심을 받긴 받았어요. 근데 그사람은 그 부르심을 받긴 받았지만 언급을 안했는데 예수믿는 사람들은 그 부르심을 응답했기 때문에 이 부르심이 조금더 달라요.

똑같이 귀에 들리는 복음전도의 부르심 말고도, 자기의 마음속에서 부터 자기마음속에서부터 그 복음을 믿고자 하는 믿음이 생기는 이런일이 생기는 바로 하나님이 나를 더 특별히 불렀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여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다는 얘기는 단순히 복음을 들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아주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이 부르심을  전도듣는 것과 구별하기위해서 뭐라고 불렀죠? 

유효한 효과가 있는 그런 부르심으로 부름을 받았다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예수믿도록 효과가 나려면 예수믿고 구원받도록 까지 효과가 나는 이런 부름을 부른 사람이 바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예수믿는 사람들은 부름받아 나선 이몸이에요. 근데 어떤 부름이죠? 단순한 전도의 부름만이 아니라 어떤 부름까지? 좀더 확실한 마음의 내적인 부름과 에수 믿도록 까지 이렇게 부름을 받은 사람들, 그래서 예수믿는 사람들의 다른 이름은 부름받은 자에요. 소명자. 

당신 이름이 뭡니까? 저는 소명잡니다. 너만 소명했냐? 아니 하나님이 나를 특별히 불러서 나는 소명자 입니다. 부르심받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무슨 대통령으로 무슨 선교사로 이차원이 아니에요. 모든 예수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성경은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이런 특별한 부르심 거룩한 부르심을 누가 해주시는 거죠? 성령님께서 우리안에 들어오셔서 이러한 특별한 부르심을 해준다 하는 것이에요.

그게 오늘 우리가 공부하는 소요리문답의 30번 31번 이야기에요.

문 30번 : 성령님은 그리스도가 값주고 사신 구속을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합니까?
답 30번 :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사신 구속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것은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키시고 또 효과적인 내적인 부르심으로써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시는 것이다.

여기에 효과적인 부름이란 말이 나오죠. 성령님이 우리를 예수를 믿도록 까지 그렇게 우리를 부르시는 것을 효과적인 부르심이라 이렇게 부르는 것이에요.

바로 우리를 예수님을 믿도록 그렇게 불러주시면 우리가 예수님믿고 있으니깐 뭐가 된다고요? 하나가 된다. 그런뜻이에요. 그러면 효과적인 부르심이란 말이 잘 안들어본말이니깐 궁금하죠. 

문 31번 : 효과적인 부르심은 뭡니까?
답 31번 : 효과 적인 부르심은 하나님의 영이 하시는 일이니 우리의 죄와 비참을 깨닫게 하시고 또 우리의 마음을 밝혀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를 권하사 능히 복음 중에 값없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시는 것이다.

누가? 성령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셔서 우리를 뭐하는 거죠? 우리가 죄인이구나 그리고 이 죄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내가 비참하게 형벌을 받는 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 또 우리의 지성도 새롭게 해주고 우리의 의지도 새롭게 해가지고 우리 죄를 깨닫게 하고 예수님도 믿게 만드는 이런 것을 바로 효과적인 부르심이다. 이렇게 한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깐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게 있어야 하는 것이에요. 뭐가 있어야 한다구요?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은 사람만 예수님 믿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성경은 이야기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죠.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은 택함을 받은 사람은 적도다' 할때에 청함을 받은 사람이 많다는 얘기는 무슨 얘길 일까요.. ? 

전도를 받은 사람은 많지만 택함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은 유효한 부르심을 받아서 믿고 구원에 이른 사람은 적다 하시는 그런 뜻이에요.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제 다시 한번 전체적인 얘기를 정리하자면은 왜 나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까? 성령님께서 나를 효과적인 부르심으로 불러주셨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죄를 깨닫고 예수님도 믿고 이렇게 구원을 받게되었습니다. 그러니 나의 이 믿음과 나의 이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뭐에요? 은혜라는 것이에요. 전적인 성령님의 은혜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당신 어떻게 예수 믿었습니까? 이거 물어 볼때 여러분이 이제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어요? 전적인 성령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때문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제가 말이죠. 길을 걸어가다가 갑자기 생각해봤는데 인생이 왜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지금까지 제가 뭐 밥먹고 살지 뭐먹고 사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날 따라 인생은 왜살지 생각이 드는 순간에 오 제가 밥을 더 먹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직장다니고 하는 이런 것들이 무의미 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래서 아마도 이 해결책은 예수가족교회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생각이 들어서 거기에 가서 그날부터 등록을 해서 제가 오늘 이렇게 예수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

이러면 될까요??

그런 과정일 순 있는데 그렇게 과정을 밟아서 왔을지라도 자기는 안보여서 그렇지 누가 역사하신 것이에요? 성령님께서 자기에게 효과적인 부름이 왓기 때문에 그래서 교회와서 복음을 듣고 자기가 예수믿겠다고 말하는 것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제 선배가 하여튼 대학교 1년때부터 집요하게 늘 밥사주고 온갖것 다해주더니만 그 선배에 정성에 내가 너무 감동이 되어가지고 드디어 3학년때 제가 항복하고 그 선배의 열심 때문에 제가 이렇게 예수님 믿게 되었습니다. 

맞는 말이에요? 틀린 말이에요?

맞는 말이긴 한데 절반이 맞는 말이에요. 왜?

그런 과정을 통해서 진짜 믿게 된 것은 누구 때문이에요? 성령님께서 나를 효과적인 부르심으로 불러주었기 때문에 그리 된 것이에요. 그래서 사실은 감사할때 어떻게 감사해야 할까요? 전적인 100%감사를 누구에게 올려야 되죠? 하나님께 돌려야 되고 선배에게는? 성령님이 햇는데 당신이 했나? 이렇게 하면 안되는 것이에요.  (웃음) 선배에게도 깍듯하게 하나님께서 성령님이 우리를 불러주거나 누굴 통해서 복음 전하는 사람통해서 불렀으니깐, 그 복음을 전해 준거에 대한  감사는 돌려야죠 선배님께, 

' 아 선배님 제가 평생 이 은혜를 다 못잊겠으니깐, 하여튼 내가 죽는 날까지 선배님이 나를 전도 했던 것 때문에 그래도 성령님에 의해서 선배님이 복음전하는 통로로 쓰임 받았기 때문에 제가 죽을 때까지 추석때 사과 한괴짝씩 앞으로 이렇게'

이건 정당한 것이에요. 너무 신학적이라고 해가지고 아니 성경은 분명히 유효한 부르심이라는 게 있는데 당신이 뭐 나를 그렇게 했어도, 성령이 나를 안불렀으면 그게 됬을 거같아 뭐.. 이런식으로 선배의 전도의 노력에 대해서 우리가 무가치하게 생각하고 그 선배의 노력에 대해서 우리가 합당한 감사를 안한다면 안되는 거죠. 하나님께서 전도자를 전도의 방법을 써서 우리를 구원 하신 것이에요.

이건 뭐와 같은 것인가 하니깐,

우리가 이땅에 태어났어요.. 사실은 우리를 누가 낳게 해주셨죠? 

엄마가 나를 낳았지만은 실제로 나를 이땅에 보내주신분은 하나님이라고 여러분 동의 하십니까? 그것이에요. 그런데 다시말하면 하나님이 창조주이기때문에 우리를 이땅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에요. 사람을 살리고 죽이고 생명을 주시고 거둬가시는 것은 하나님이지 무슨 우리의 엄마가 아빠가 나에게 그걸 줬겠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할때 누구를 매개로 쓰는가 하니깐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를 통로로 삼아서 이땅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적어도 우리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무슨 감사를 드려야 하는 가 하니깐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이시긴 하지만 내가 이땅에 들어오는 통로로 쓰임 받으신 것에 대해서 죽을때까지 뭐해야 되겠죠? 아빠 엄마한테는 죽을때까지 사과 한괴짝이 아니고 뭐해야 되겠죠? 

아빠를 죽을 때까지 축복해드리고 잘해드려야 한다고 동의 합니까? 그리해야 되는 것이에요. 아빠를 엄마를 축복해 드리고 잘해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 전도자로 쓰임받는 다는 것은..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의 육신이 우리 인간적으로 이땅에 태어날때 부모의 역할을 하신 것이니깐, 마땅히 부모님에 대해서도 마땅이 감사를 드려야 한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이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사실은 우리가 어떻게 태어났는가 하는 것과 같은 것이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태어나게 하셨으나 바로 육신의 부모와 전도자를 사용하신 것이 같은 이치이다.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죠.

- 거듭남에 대한 이견 - 알미니안 주의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까 절반의 사람들 아까 절반의 복을 받았다고 한 사람들 그사람들은 누구인가 하니깐, 이것을 알미니안 주의자라 하는 사람들이에요. 이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뭘 믿는 가 하면 우리가 태어날때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사실도 다 믿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어 주시고 그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서 대신 돌아가셨다고도 다 믿어요. 그리고 성령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것도 믿어요. 그런데 그 은혜를 내가 받고 안받고는 나한테 달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에요.

아무리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어주시고 또 예수님이 자기 목숨을 주시고 또 성령님이 우리에게 적용을 하려고 해줘도 마지막으로 내가 그것을 거절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은 나의 선태과 나의 의지로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흔히 이런 입장을 아주 명료하게 드러난 사람의 이름을 따서 알미니우스라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알미니안 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혹시 이런 분이 계십니까? 지금까지는 괜찮아요. 몰랐으니깐 괜찮은데 지금 이후로 계속 여러분이 알미니안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주긴 줬지만은 목사님 제가 말이죠. 그거를 받을수도 있고 안받을수도 있었는데 목사님 분명히 아세요. 제가 그것을 받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답니다. 목사님 .

이렇게 말하면 제가 굉장히 화가 날것이에요. 아니 그런게 어디있습니까? 그런게 성경에 어디있습니까? 아니 그렇게 믿으면 당신이 하나님께 감사를 어떻게 돌리시겠습니까? 그러면 당신이 믿었으면 앞으로 죽을 때 까지 당신이 계속 지금 믿는 것을 끝까지 유지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한발짝 꼬리를 빼겠죠. 그러면서 ' 죽어봐야 알지 목사님 그걸 제가 어떻게..'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가게 될 것이에요. 그래서 이런 사람도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에요. 예수님믿고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인데 자기가 어떻게 구원받게 됬는지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에요. 

다시 말하면 당신 어떻게 태어났습니까? 우리 아빠 엄마가  날 낳으시고 엄마가 날 길러 주셨습니다. 이렇게 만 대답하면 조금 이해력이 조금 떨어져요. 제가 화가 나는 것이에요.아니 그얘기 맞긴 맞는데 어째 하나님이 당신을 이땅에 택했다는 사실은 왜 알지 못한채 그냥 아빠가 날 낳으시고 엄마가 날 기르시고 여기까지만 니가 알고 있느냐. 좀 이해력이 부족하죠. 그렇다고 해서 당신 사람도 아니야 이렇게 말할 수는 없잖아요. 그 이해를 잘 못한다고 해서 당신 인간도 아니야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해력이 좀 부족할 뿐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알미니안 신학을 가진 사람이라할지라도 그런 신학이 있기때문에 다 구원받는다 그렇게 말하면 안되는 것이에요. 그런 사람들도 예수님 믿는 믿음이 진실하다고 한다면 구원받는 거죠. 받으나 자기가 어떻게 구원 받는 지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께 전적으로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면에 있어서는 조금 부족하게 살아갈 것이에요. 좀 불쌍할 뿐이지 그 자체가 구원받지 못하거나 그런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가 감리교라고 하는 그런 간판을 달고 있는 성결교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교회가 있는데 그 형제자매들이 우리의 알미니안 형제 자매들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그 형제 자매들을 그냥 한 형제로 받는 것이에요.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하는 것이에요. 그러나 조금 우리가 직접 말하기는 그렇지만 혼자가서는 조금 변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을 해야 되는 거지요. 그래야 더 구원의 확신과 더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더 충만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정도로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에요.

- 거듭남에 대한 이견 - 펠라기우스 주의

그런데 절반이 아니라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사람들을 신학적으로 말할때 펠라기우스 주의자라고 하는데 어거스틴이 살았던 시대에 펠라기우스라고 하는 수도승이 이런 이론을 최초로 뚜렷하게 드러 냈기 때문에 그 이름이 붙었어요. 

이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니깐, 아담이 지은죄가 그건 아담이 문제 아담이래로 태어난 사람들은 죄없이 태어난다. 아담의 죄가 우리한테 전혀 물려지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리 아담의 후손이라도 태어나는 순간 부터 그냥 아담이 죄짓기 이전상태로 태어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에요. 이리 생각하니깐, 자기가 천국에 들어가고 안들어가고는 뭐에 달려있는가 하니깐,, 자기가 행동, 열심히 노력하면 천국갈 수있는것이고, 열심히 못하면 못가는 것이고 그냥 자기가 천국에 가고 못가고를 전체가 자기의 노력에 달려있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경우가 여러분이 앞으로 책을 읽거나 설교를 들을때에 찰스피니라는 사람이 있는데 19세기에 미국에 유명한 부흥사였던 찰스피니가 이 펠라기우스 주의자 에요. 

그래서 이 사람은 전도는 많이 했어요. 많이 했는데 문제가 뭔가 하니간, 복음을 제대로 안전하는 전도를 하고 돌아다녔어요. 뭔가하면, 우리 사람들이 태어날때 펠라기우스 주의자이기때문에 태어날때부터 선하게 태어난다. 태어날때부터 선하게 태어난다 이래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깐 뭐를 안믿는 가 하니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은 죽음이 내죄를 대신해 죽은 대속적인 죽음이 아니라서 안믿는 것이에요. 

그리고 예수님이 나대신에 순종하신 그 의가 나에게 넘어옴으로 내가 의롭게 된다는 것도 안믿는 것이에요.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에 의해서 내가 이렇게 유효한 부르심을 받는 다는 이것도 안믿는 것이에요.

이런 걸 전체 안믿는 상태로 그러니깐 뭘하는 가 하면 사람들에게 착하게 살면 구원받을 수 있다. 이런 메시지를 하러 돌아댕기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돌아댕겼고, 그리고 그 메시지를 듣고 그렇게 교회안으로 들어왔어요. 바른 종교가 아니죠.

그런데 오늘날 이 찰스피니의 아주 중요한 후손이 하나 등장했는데 그게 바로 요즘 긍정의 힘이라는 책을 쓴 조엘 오스틴이라는 사람이에요. 그사람만 그런게 아니라 수없이 많은데 가장 이름난 사람이에요.

여러분 펠라기우스주의로 생각하면 사람은 태어날때부터 착하게 보니깐 뭐 지금 죄도 없고 뭐 그런것도 없어요. 하나님의 심판 없으니깐, 남은 것이라고는 착하게 태어났으니깐 오로지 남은 것이라고는 조금더 착하게 살아서 여러분이 저 좋은 인생을 살라고 밖에는 말할게 없는 것이에요. 

죄를 짓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다고 생각해야 구원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의 죄로부터 용서 지옥으로부터 건짐받는 것을 생각할텐데 그런 상태가 아니고 그냥 착하게 태어난 상태이니깐 그냥 그사람에게 해주는 방법은 무슨 구원이 우리의 죄와 죽음과 사람과 지옥으로 부터 구원이 아니에요. 그러니깐 오직 구원이란 이땅에 살아있는동안 뭐를 좀더 하면? 좀더 부자되고 좀더 건강하고 좀더 행복하면 그게 바로 그사람이 생각하는 구원이에요. 그러니깐 그걸 이루는 방법은 뭐에요? 좀더 부자되고 좀더 건강하고 좀더 행복하게 되는 방법은 뭐에요? 십자가의 도가 아니에요. 그게 아니고 뭐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이에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사람이 생각하는 죄는 하나님이 우리를 선하게 착하게 지었고, 아주 잠재력이 많은 존재로 지었는데 나자신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해가지고 나는 못났어, 나는 아무런 가치도 없어 나는 별볼일이 없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죄라는 것이에요. 

이친구라고 하는 것은 형제가 아니기때문이에요. 이 친구는 그냥 우리가 착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가 뭐가 죄냐? 뭐가 죈가 하니깐 내가 착하게 태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내가 죄인이라는 둥, 내가 아주 비참한 존재라는 둥, 내가 문제가 많다는 둥, 나자신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죄라는 것이에요.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는 것이 죄라는 것이에요. 이친구 말은..

성령의 가르침이 아니에요. 이게 만일 죄라고 그러면 구원은 뭐겠어요?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으로부터 부정적인 자아상으로부터 탈출해서 뭐하는 거죠? 자기자신을 다시 긍정적으로 바라보라는 것 자기자신에게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고 믿을 것, 그리고 자기가 조금만 노력을 하면은 자신 속에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마음껏 개발해가지고 지금 보다 훨씬더 잘 살 수 있고, 지금보다 훨씬 더 건강하게 될 수 있고, 지금보다 훨씬 더 마음이 평안하게 살 수 가 있는데 왜 내 잠재력을 개발하지 않고 썩혀놓고 있느냐. 

이친구가 잘 생긴 외모에다가 또 덧니까지 있다면서요. 그 덧니를 살짝 드러내서 웃으면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인다면서요. 그렇게 하면서 이렇게 하니깐 많은 사람들이 그렇구나 우린 가능성으로 똘똘뭉친 존재고 우리는 선한 존재고 조금만 노력하면 조금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조금만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조금만 긍정적인 행동을 하면은 우리가 지금보다 월등히 좋아 질 수 잇는데 왜 지금까지 내가 지지리도 못나가지고 그렇게 긍정적인 생각을 못품고 살았던가 해서 그래 지금부터는 나도 내 마음속에 긍정적인 사고방식 긍정적인 마음 긍정적인 상상력 긍정적인 말로 똘똘 뭉친 긍정적인 사람이 너무 많다 그것이에요.

그것은 복음이 아니에요. 복음이 아니고, 성경에서 말하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이친구가 상당히 문제가 많다 그리 말하는 것이에요.

- 거듭남에 대한 이견 - 개혁주의, 칼빈주의, 어거스틴 주의

오늘 우리는 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밖에는 우리가 구원 받을 길이 없는가 하니깐, 성경이 말해준 우리의 상태 때문에 그런 것이에요. 우리가 아담이 죄를 짓고 난 다음에 태어난 우리는 성경이 말하기를 우린 전적으로 부패했다고 말하는 것이에요. 

예레미야 17장 9절에서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단순한 행동이 아닌 단순한 말이 아닌 우리의 마음 전체가 부패해 있는 것을 누가 알리요!! 누가 이를 알리요!! 하나님이 안가르쳐 주면은 누가 자신의 마음이 부패해 있다는 사실을 누가 알리요라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해주고 있어요. 우리는 단순한 내가 거짓말 한두마디 하고 행동 한두개 잘못하고 이런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 자체가 지금 부패해 있다. 라고 성경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7장 20-23절에 보게되면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음해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살인 강간 강도 폭력 이 모든 것들이 다 어디서 부터 나온 것이라구요? 마음에서 부터 나오는 것이지, 마음은 괜찮은데 그냥 환경이 나빠서 괜히 이친구가 야골려서 홧김에 그런게 아니라 그거에요. 모든 시기 질투 분노 살인 이 모든 것들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부터 죄로물든 이 마음속에서 부터 그런 것들이 밖으로 표출된 것이라.  표출 안했어도 지금 마음이 죄로 가득들어차 있는 것이에요. 안뱉어 냈을 뿐이지..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상태를 그렇게 말씀했어요. 예수님께서.. 우리는 태어날때 부터 이런 악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게 되는 것이에요. 왜? 아담이 죄를 진 이후로 그 아담의 죄가 우리가운데 유전이 되었기 때문에 그 죄라 우리에게 물려져가지고 우리는 태어나면서 부터 우리는 원래 아담은 그렇지 않았어요. 

원래 하나님께서 처음창조할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아담이 죄짓고 난 다음부터 태어난 우리는 태어나면서 부터 이렇게 우리의 마음이 죄로 물들어 있는 죄로 부패해 있는 이런 상태로 우리는 태어나게 된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어요. 

그래서 로마서 7장 18절에서는 내속 곧 내 육신의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이런 자연적으로 태어난 본성을 육신이라 부르고 있어요. 육신은 우리가 선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태에 지금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에요. 

로마서 8장 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 할 뿐 아니라 할 수 도 없음이라'

우리의 아담의 후손으로 자연스럽게 태어난 우리의 본성은 뭐할 수가 없다고요?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때문에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도 없고, 또 굴복하지도 않는다. 이게  예수믿지 않는 사람들의 지금 마음의 상태에요. 하나님과 원수된 상태에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하기도 싫고 하기원해도 할 수 없다. 그게 바로 예수믿지 않는 사람들의 자연인의 마음상태라고 성경은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상태를 탈출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우리를 탈출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 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죄를 깨닫고 예수님 믿고 구원 받는 것은 영적으로 깨달아야 하는 문제이기때문에 우리가 자연적인 우리의 아이큐를 가지고는 알수도 없고 분별할 수 도 없다. 

에베소서 2장 1절에서는 아예이렇게 말하죠.

'그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예수 믿기전에 우리의 상태는 어떤 상태라구요? 영적으로 죽었던 자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니깐 결론적으로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성경이 말하기를 영적으로는 하나님에 대해서 죽은 상태로 태어난다. 예를 들어서 착한 일을 전혀 하지 않는 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이웃에게 착한일을 하고 구제하고 자녀를 잘 기르고 이런 일반적인 착한 일을 못한다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일은 사람이면 다 할 수 있으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이런 우리가 구원받는데 필요한 이런 영적인 선을 할 수 없는 상태를 영적으로 죽었다 그러는데 예수 믿지 않은 사람들의 상태는 어떤 상태라구요? 이런 시민으로서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남편과 아내로서 자식으로서 친구로서 할 수 있는 그런 선한 일정도는 아직도 할 수가 있으나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고 사랑할 수 있는 이런 영적인 일은 전혀 할 수가 없는 영적으로 어떻다구요? 죽은 상태에 태어난다. 

이렇게 믿는 사람들을 바로 이렇게 믿는 믿음을 가장 명쾌하게 말한 사람이 누구였죠? 

교회사에서?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사람이에요. 어거스틴이라는 사람. 그리고 이 어거스틴 보다도 더 명쾌하게 말한 사람이 칼빈이기 때문에 이런생각을 가진사람들을 뭐라고 부르는가 하니깐 어거스틴주의 칼빈주의 이렇게 말하는 것이에요.

딴게 아니고 성경의 말을 그대로 믿는 것. 태어날때부터 우린 죄인으로 태어났고, 태어날때 부터 우리의 마음은 완전히 죽은 상태로 이렇게 태어났다고 믿는 사람들을, 이렇게 믿고 가르치는 사람들을 어거스틴 주의라 혹은 칼빈주의나 혹은 개혁주의라 말하는 것이에요.

이렇기 때문에 이런사람을 살리는 방법은 뭐밖에 없을까요? 죽었는데..

누가? 하나님이 100% 전적인 주권으로 은혜로 우리를 살려내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의 유효한 부르심은 100%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님의 은혜로 우리가 중생했다 거듭났다 이것을 유효한 부르심이라 말하는 것이에요.

이렇게 말하는 것을 칼빈주의라고 부르지 뭐 이상한게 아니에요. 
성경이 가르치는 우리의 죄있음을 믿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이렇게 구원 받았습니다. 지금부터는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만 살겠습니다. 이렇게 믿고 이렇게 가르치고 이렇게 사는 사람을 칼빈주의라고 그러는 것이에요. 쉽게말하면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가르치고 성경대로 그렇게 살자고 하는 사람들이에요.


결론 

그런데 왜 펠라기우스나 알미니우스 같은 사람이 생겻는가 하니깐 성경대로 안믿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태어날때 성경은 죄와 허물로 죽었다고 말하는데 그렇게 안믿는 것이에요. 그렇게 안믿고 죽긴 뭘죽어 약간 병들었을뿐이지 약간 병들게 태어났기 때문에 얼마든지 나의 노력으로 나의 선택으로  예수를 믿기로 선택할 수도있고 안할수도있는거지 이렇게 믿으니깐 이사람들의 모든 초점은 실제로 보면 바로 뭐가 되겠어요? 펠라기우스는 전적으로 이 구원이 누구한테 달렸다구요? 하나님도 필요가 없는 것이고, 내가 그냥 구원 받는 것은 100% 누구의 일이에요? 자기 자신의 일이라고 믿는 사람. 

이사람들은 누구와 정극단에 서있죠?

 100% 하나님의 은혜로만 우리가 중생한다 구원받는다 이렇게 믿고 가르치는 사람이 누구라고 그랬죠? 어거스틴인데 이 반대로 우리가 구원받는 우리의 행함과 착함과 노력으로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필요없다. 이렇게 한사람이 누구라고 그랬죠? 펠라기우스. 

정반대에 있는 것이에요

칼빈주의와 어거스틴 주의는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 다는 입장이고
펠라기우스 주의는 오직 행함으로 구원받는 다는 입장이에요.

중간쯤 있는 사람들 50%인 사람들 누구죠? 하나님의 은혜도 필요하지만은 그러나 결과적으로 마지막은 내가 행동으로 보여야 구원을 받는다 이러니깐 구원받는 문제에 있어서 뭐와 뭐가 짬뽕됬어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행동이 두개가 짬뽕이니깐 하나님과 인간이 협력해서 구원을 얻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알미니안주의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앞으로 우리 교회에서는 지금까지는 괜찮습니다. 지금까지는 모르고 긍정의 힘읽고 좋다고 그렇게 살자고 하면서 그게 펠라기우스 주의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열심히 꿈을 가지자 긍정적인 말을 하자고 돌아댕기던 사람들은 지금까지는 괜찮아요. 그러나 앞으로는 조금 곤란합니다. 

그리고 알미니안 처럼 그렇게 하나님 은혜도 필요하지만 결국은 우리가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런식으로 나오는 사람도 문제가 있어요.

제가 지금 이렇게 말한 것은 최초로 우리가 거듭나는 문제를 가르치는 것이지. 성경은 그렇게 성령님이 와서 거듭나게 하면 그다음에 회개 하고 믿는 것은 누구의 일이에요? 성령이 우리를 살려놓으면 살아난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 믿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것이에요. 그때 성령님이 대신 해주는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러니깐 오직 은혜라는 말은 어디에 쓰는 말이죠? 우리가 구원을 처음 받는 그 순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순간, 예수 믿는 사람이 되는 그 순간은 100% 누구은혜라는 것이에요? 하나님 은혜지만은 

그 은혜를 입고서 이제 우리가 회개하고 믿고 거룩해지는 이것은 누구와 누구의 노력이 있어요? 사실은 하나님과 우리의 노력이 협력하는게 있어요. 그래서 무조건 이 어거스틴 주의와 칼빈주의는 뭐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도 무조건 하나님의 100%은혜라는 말이 아니에요. 우리가 최초로 예수믿는 사람이 되는것 중생하는것 이문제에 있어서만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다 왜 그런거죠? 성경이 우리를 영적으로 죽었다고 하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나는 방법은 오직은혜.

예를 들면,

나사로가 죽었어요. 나사라고 살아날수 있는 가능성은 누구의 노력으로 살아날수 있을까요?

1번. 나사로가 생각하기를 이렇게 있는 것은 억울하다. 내가 가능성이 많은 존재인데 이렇게 내가 죽어있는것은 나의 가능성을 말살하는 것이기때문에 이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야 내가 빨리 무덤문을 박차고 나가서 다시금 원기 왕성하게 온동네를 누비면서 다녀야지 이렇게 해서 무덤문을 박차고 나왔어요.

2번.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와라! 이렇게 말하니깐, 들어보고 나갈까 말까. 나가야지 말아야지 내가 그동안 많이 살아왔는데 나가야지 말아야지 그렇지만 예수님이 나오라니깐 해서 이렇게 나왔어요.

3번.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말한 동시에 예수님께서 생명을 나사로에게 줬어요. 그런다음에 나사로에게 생명이 돌아왔어요. 돌아오고 나니깐 예수님이 나오너라 하는 소리가 들려서 당연히 순종해야죠 예수님 말씀인데 하고 이제 자기의 발로써 걸어나왔어요.

나사로가 살아난거에 대해서 1,2,3번중에  몇번 같아요?

3번이죠.

3번이 어떤 입장이죠? 어거스틴 주의요 칼빈주의이고,
2번은 알미니안 주의이고.
1번은 말도 안되는 펠라기우스 주의 

2번은 헷갈릴수도 잇어요. 그러나 3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 그 효과적인 유효하심이라는 것이 먼저 성령님이 우리를 살리는 작업이다. 살려놔야 우리가 그다음에 회개도 하고 믿고 순종도 할 수 있고, 소망도 가지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인제 여러분이 살아난 사람은 뭐가 필요할 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적극적으로 순종하고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소망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그런데 지금도 살아난 다음에도 하나님 나를 그 일으키실려면 통째로 일으켜 보세요 나는 꼼짝 안하고 있을테니 하나님 다하신다면서 꼼짝도 안하고 기도도 안하고 성경도 안읽고 전도도 안하고 사랑도 안하고 하나님 필요하시면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저를 한번 움직여 보세요. 

이런 사람들은 또 이상한 사람들이죠.. 그런 사람들을 극단적인 칼빈주의라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깐 참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이상하지 않게 사는 게 참 힘든 일이다. 성경말씀을 잘따라야 이상하지 않게 이 위험을 피해서 그렇게 걸어가는 삶이니깐 성경 말씀을 잘 배워야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잘 살 수 가 있다

그것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여러분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나?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님의 효과적인 부르심으로 내가 예수믿게 되었습니다. 이모든 영광은 제가 하나님께 돌립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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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 믿게 되고 죄 용서 받고 영생을 얻고 하나님 자녀되고 천국을 우리의 기업으로 물려받게 된 모든 것이 참 제게는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이시간 다시 한번 곰곰히 되짚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 주신 것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는 정말 우리가 입이 10개라도 이 열개의 입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이 복된 구원의 소식을 부지런히 전할 수 있도록 우리가운데 은혜를 더해 주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