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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거인/소교리문답

26.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됨

하나님 아버지

 

이 복된 생명의 잔치 영광의 잔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복주고자 하시는 복된 잔치에 초대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시간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선하신 분이시며 얼마나 긍휼과 은혜가 풍성한 분이신지를 저희들에게 말씀을 통해서 드러내어 주시고 밝혀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더 한층 분명하게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풍요로우심을 위대하심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 되게해 주옵소서. 그리해서 우리가 이땅을 살아갈 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이 한가지 복만 가지고도 우리 세상의 온갖 어려움들을 다 이길수 있는 자 된 것을 새롭게 자각하게 해 주시고 우리가 이땅에 잘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이 놀라운 특권 때문에 마땅히 우리가 그렇게 살고자 하는 새로운 동기를 부여받을 수 있도록 은혜를 주옵소서. 이시간도 성령님께서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아직도 거듭나지 못한 심령들이 있다면은 주의 영께서 이시간 이 말씀을 새로운 씨앗을 삼으셔서 그들의 영혼을 새롭게 하시며 거듭나게 해 주옵소서.

 

아직도 우리의 영혼이 어린 상태에 있어서 하나님의 부요하심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기때문에 늘 지치고 곤고한 심령이 있다면 이 생명의 말씀이 생명의 양식이 되어서 그들의 영혼을 부요하게 하고 풍요롭게 하고 윤택하게 해 주옵소서. 저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잘 살고자 하는 그런 결단이 있지만 시시때때로 넘어지는 지체들이 있다면 이 하나님 말씀이 우리의 정신에 감초가 되고 완전무장이 되어서 우리가 이세상에서 정말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게 해 주옵소서.

 

이모양 저모양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비교하는 저희들에게 이시간 예비하신 하늘의 문을 열어 하늘의 복을 흡족하게 당신의 자녀들에게 부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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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예수님을 믿게 되면은 가장 중요한 변화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롭게 변화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목적도 구원을 받은 목적도 다른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맺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더 풍성하게 맺게 됩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오늘 성경 말씀에 보니깐, 영접하는자,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에 들어가게 되는데 어떤 관계에 들어가게 된다구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하나님의 자녀로 칭함을 받을 수 있는 그런 권세를 얻게 된다. 이렇게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이 되게 된다. 우리가 예수 믿어서 받는 복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니깐 예수님을 믿게 되면 예수님을 우리가 영접하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이 되게 된다. 우리의 가족이 바뀌게 된다. 우리의 신분이 변화되게 되는데 그것은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그와 같은 권리. 그와 같은 권세. 그와같은 복을 받게 된다. 오늘 이렇게 성경말씀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실은 우리 주변에서 입양한 그런 가정을 몇가정 알고 계시겠죠. 정말 입양이 되가지고 그 인생이 확 핀 꽃 핀 그런 사람들을 한번 주변에서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이 들어요. 아니면 또 주변에는 없다 할지라도 가끔 우리가 신문이나 티브이 뉴스 같은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서 한국에서 그렇게 고아로 태어나서 있다가 외국에서 정말 훌륭한 부모가 자녀를 입양해서 훌륭하게 장성을 해서 한사람의 몫을 훌륭하게 잘 감당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들어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제 주변에도 어릴때 그런 가정을 보았어요.

 

정말 믿음이 제가 판단 할때 어린 마음이었지만 정말 우리교회에서 신앙이 제일 좋은 부부집사님이시다 그런 마음이 들정도로 아주 신실한 부부가 계셨는데 자녀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분들이 기도하시다가 한 자녀를 입양을 하게되었는데 얼마나 사랑과 정성과 믿음으로 잘 양육했는지 주변에저희들이 볼때도 정말 저 아이는 복받았다. 이렇게 경건하고 이렇게 사랑이 많은 부모 밑에 입양이 되가지고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면 주변 사람들이 정말 저아이는 복받았다.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요.

 

그리고 제가 한 세월이 오래 지나서 어느 교회에서 수련회인도를 하고 잇는데 또 그친구가 와서 인사를 하는데 보니깐 너무 멋진 그런 청년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고서 정말 너는 복받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너 정말 복받았다. 그렇게 훌륭하고 경건한 그런 부모에게 입양되어서 이렇게 훌륭하게 자랐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한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사실 그 아이가 만일 흔히 말하는 조폭 두목에게 입양이 되가지고 어릴때 부터 아주 학대 받고 늘 훈련받는 것이 다른 사람 때리고 와라, 훔치고 와라.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랐다고 하면 얼마나 인생이 망가졌겟어요.

 

그런데 정말 경건한 부모에게 입양이 되가지고 그의 인격도 신앙도 그리고 그의 장래가 정말 훌륭하게 펼쳐질수 있는 그런 자녀로 자란 것에 대해서 정말 감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이 성경의 진리는 무엇인가 하니깐, 예수님을 믿는 다고 하는 것, 우리가 구원 받았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여러가지 설명을 할 수 있겠지만은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왕중왕이신 참신 이신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 이시고 지금도 왕으로 이땅을 다스리시며 무한한 부요와 무한한 진리와 무한한 선함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계시는 그 하나님께 우리가 자녀로 입양이 된다. 그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된 자녀들이 바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다 하는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사실은 오늘 이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는 예수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이 된다하는 이 진리를 우리가 깨달아야 할 만큼 확실히 깨닫는 다면 한 10번쯤 까무러쳐야 하는 것이에요. 너무 놀라워 가지고!! '야 예수믿게 된 것이 이렇게 복된 것인가. 예수님 믿게 된 것이 이렇게 놀라운 것인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게 된 것이 이렇게 영광스러운 것인가!!' 해가지고 몇번 까무러쳣다가 일어나서 또 감사하고 또 까무러 쳤다가 일어나서 감사하고 이정도가 되어야 이 양자의 진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됬다는 권세를 말씀해 주는 이 성경의 말씀을 충분히 깨달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깐 아직 여러분들이 그렇게 까무러친적이 없으면은 이 성경의 진리를 온전히 다 이해한 것은 아니니깐 오늘도 양자에 대한 설교 그동안 내가 들은 설교만 해도 몇번인데.. 하며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문제가 있습니까? 마음속으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게 얼마나 놀라운 진리인데. 그리고 이 놀라운 진리를 내가 분명히 알고 있다고 그러면 내 삶이 변화 되었어야 마땅한 것인데 아직 그렇지 못하다면 아직도 나는 이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된다고 하는 이 엄청난 진리를 더 탐구하고 더 알고 더 경험하고 더 우리의 삶속에 중요하고 실천해야 될 것들이 엄청나게 남았다. 그렇게 생각해도 좋은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때에 오늘 이 성경 구절은 저에게는 아주 아름다운 음악 소리처럼 우리가 지난 주에 생각했던 우리가 예수믿고 난 다음에 죄용서 받고 하나님께서 나를 너는 이제 의로운 자다 라고 선언해주시는 그것보다 더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영접하는 자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는 이 놀라운 진리라고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렇게 한번 비유를 들어볼 수 있겠죠. 성경은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에 사실은 마귀의 자녀라고 그래요. 너희가 죄를 지으면 너희는 마귀 자녀라. 죄의 자녀라. 너희 아비가 마귀구나. 예수님께서 자신을 믿지 않고 거절하는 사람을 향해서 마귀의 자식이라고 그렇게 말해요.

 

마귀의 자식으로 그대로 있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진노의 자식이라 성경은 또한 그렇게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뿐 아니라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하나님의 불순종의 자식으로 그렇게 불리기도 하죠.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되면 하나님의 가족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에요. 요즘은 그 홈리스라고 그래서 집없는 분이라고 그랬는데 제가 어릴때는 그런 분들을 부르는 명칭이 거지라고 불렀어요. 집없다하는 개념은 마찬가지겠지만 좀더 생동감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왕자와 거지 뭐 이렇게 번역할때도 왕자와 홈리스 이렇게 번역은 좀 그렇죠.

 

그런의미에서 만일 한 자녀가 태어나 보니깐 자기 아버지가 길거리를 주름 잡으시는 홈리스의 대표에요. 옛날에는 그런 표현을 거지 왕초라고 불렀어요. 그러니깐 인제 그렇게 태어난 것이에요. 맨날 이 아버지는 이 자녀를 폭력을 가하는 것이에요. 배운것이 그것이니깐, 그래서 이 아이에게 교육도 제대로 시키질 않고, 이제 아이가 좀 자라자 마자 길거리 나가서 어떻게 하면 많이 얻어 오는가? 어떻게 하면 동정심을 유발 시켜서 많은 구걸을 해오는 가를 이제 가르치고, 그걸 많이 못해오면 또 매를 대서 애를 때리고 밥도 안주고 그래서 이 자녀가 늘 그렇게 매 맏고 교육도 받지 못하고 거의 밥도 제대로 얻어 먹지 못하는 이렇게 비참하게 살다가 어느날 그 다리 밑을 지나가던 그나라의 재벌에 의해서 그 소년이 너무 불쌍하게 여겨져가지고 그 소년을 자기의 자식으로 입양을 했어요.

 

일약 갑자기 그나라의 길거리를 주름 잡던 아버지 밑에서 그나라를 제일 대표하는 대 재벌의 집으로 그렇게 자식이 입양이 되니깐, 갑자기 너 먹는 것을 통닭 먹을래? 삼겹살 먹을래? 막국수 먹을래? 하여튼 뭐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먹는 것을 마음껏 먹여주고 그리고 너가 뭘 잘하느냐? 뭘하고 싶으냐? 해서 교육도 시켜주고 그렇게 인격적으로 아주 훌륭하게 교육을 시켜주는 부모의 집으로 입양을 가게 되었다면 그 인생은 완전히 핀거죠.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비유를 만들어 볼수도 있겠어요. 옛날에는 왕과 노예가 있던 시절이니깐, 어느 한자녀가 노예의 자녀로 태어났어요. 아버지와 함께 늘 어릴때부터 천대 받고 노예생활 하면서 그렇게 늘 억눌리고 학대 받고 매맏고 그렇게 살아가던 자녀가 얼마나 비참하겠어요. 자기의 미래가 없고, 아버지가 노예였으니, 자기도 노예일 것이고, 또 자기가 낳는 자식도 자기 처럼 또 노예가 되어서 영원히 이 노예의 집안의 굴레에서 평생하는 직업이라고는 휴가도 없고, 월급도 없는 그런 종노릇이 자기의 평생의 운명인 그런 집안에 태어난 아이가 어느날 그나라의 왕이 정말 그나라의 왕이 불쌍히 여겨서 그 아이를 자기 아들로 왕자로 입양을 해서 내가 너에게 왕자교육을 시켜줄 것이고, 장차 이 왕국 자체를 너에게 물려주겠다. 이렇게 한다면 노예의 아들로 태어나서 평생 노예로 살아가야될 한 인간이, 한나라의 왕으로서 명예와 영광과 모든 권세와 지위를 누릴 수 있는 그런 위치로 바뀐 것은 입양이라고 하는 제도를 통해서 왕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그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엇다고 할 수가 있겠죠.

 

사실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면, 우리가 생각할때 로또 한 10번 당첨된거하고 바꾸겠어요? 이런일이 일어났다고 하면 로또 10번 당첨된 것 보다도 완전히 자기 인생이 바뀌었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죠. 근데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이야기는 바로 저와 여러분이 제가 비유로 만들어드린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보다도 더 완전한 신분의 전환 완전한 인생의 전환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원래 우리가 어떻게 살던 자들이라구요? 마귀의 자녀로서 영원히 죄의 종으로서 영원한 지옥을 가게되어서 형벌과 고통과 저주와 심판을 받으면서 우리가 풀려날 길도 없는 세세무궁토록 고통을 받아야될 그와 같은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아들로 입양을 시켜주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영원한 새하늘과 새땅에서 영원한 천국에서 우리가 장차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이니깐, 그 왕되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히 왕 노릇 하는 그리고 모든 것들을 상속 받는 그와 같은 위대한 자리로 우리가 바뀌게 되었다.

 

그것이 양자의 진리. 양자의 교리라고 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깐, 아까 말한 것처럼 까무러 쳐야 한다는 것이에요.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주었습니까. 만일 그 거지소년과 그 노예소년이 자기를 입양해준 재벌아버지와 왕아버지 앞에서 정말 날마다 자기를 생각할때 마다 자기의 예전신분을 생각하고 자기의 현재 신분을 생각한다고 그러면  얼마나 자기가 지금 바뀌게 된 이 놀라운 신분 때문에 꿈인가 생시인가 하도 몸을 꼬집어가지고 온몸이 멍 안든 것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꼬집어 봐야 정말 자기가 바뀌게 되었다고 하는 이 신분의 엄청남을 확인하는 것이라 할 수가 있겠죠.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은 엄청난 신분의 변화가 생기게 된 것이에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것에 담긴 엄청난 권리와 의미를 모르니깐, 예수 믿게 된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알지 못해서 예수 믿고 나면 우리가 기도하는 것 자체가 별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리 큰것도 아닌 그런 걸 기대하나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이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게 된 것이다. 하는 사실을 안다면 그 속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엄청난 복으로 다가 오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이 말속에는 몇가지 사실을 잘 알아야 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도대체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이 될 수가 있었던 것인가? 하는 것, 도대체 어떻게 ? 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이 되게 된 것인가 하는 것들을 잘알아야 겠죠.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할때에 우리가 받게되는 그런 결과 그런 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에요. 여러분 얼핏 생각해도 뭐겠죠?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면 어떤 복을 받게 될 가요?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삶을 책임져 주시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돌보심이 있을 것이고, 그뿐 아니라 잘 돌보다가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문제를 일으킬때는 아버지가 어떻게 하죠? 바르게 사람되라고 고쳐주기도 하는 것이에요. 징계를 통해서 고쳐주기도 하고 장차 그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어떻게 합니까? 상속 시켜주는 것이에요. 이런것들이 우리속에 포함돼 있을 것이다. 하는 것이에요.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면 왕의 자녀면 하나님 자녀에 걸맞게 살아가야할 그런 책임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런점들을 몇가지 살펴 보겠습니다.

 

 본론 - 1

 

우선. 우린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겠다고 하는 것은 창세전부터 가지셨던 하나님의 계획 때문이다.

 

우리 한번 에베소서를 보겠습니다.

 

에베소서 1장 4절 5절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러니깐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는 것이 그냥 어쩌다가 우연히 하나님께서 그렇게 주실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해서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만드는 것은 이 우주 만물을 창조 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가지셨던 무엇이라구요? 계획이라는 것이에요.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이런 놀라운 계획을 가지셨다. 하나님께서 이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을 창조하고 예수님을 보내시고 성령님을 보내시고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시는 모든 과정은 사실은 창세전에 계획하셨던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의 아들로 만드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이 계획을 실천하기위해서 하나님께서 창조도 하시고 타락한 우리를 구원도 하시고 예수님도 보내시고 성령님도 보내시고 또 이렇게 교회의 한 일원이 되게도 하시고 하는 이 모든 것은 창세전 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에 의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이 되게 되는 것이다. 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깐 하나님의 그 계획이 얼마나 놀랍고 얼마나 엄청난지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얼마나 부요한지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만드실때 그냥 우리 인간을 이 하나님의 노예처럼 부려먹기 위해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창세전 부터 저와 여러분을 창조 하실 때에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도록 그렇게 우리를 창조하시고 계획하셨다 하는 것이에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많이 발굴할 수 있는 그런 석판들에 의하면 이런 그 지역에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나오는 그런 창조이야기. 창조신화들이 있어요. 근데 그 창조신화에 보게 되면 신들이 왜 인간을 창조했느냐 보면, 신들이 상급신이 있고, 하급신이 있는데 상급신들이 하급신들을 노예처럼 부려먹었어요. 그래서 하급신들이 신들을 위해서 늘 노동을 하고 이렇게 하는데 너무 힘들고 불편한 것이에요. 우리 몸이 힘듭니다. 우리도 그러고 족보가 신인데 이렇게 해야겠습니까? 이렇게 불평을 하니깐, 이 하급신들의 노동을 대신해 줄 노예를 만들기 위해서 인간을 만들었어요. 이게 바벨론 신화에 나오는 창조신화의 이야기에요.

 

왜 인간을 만들었느냐? 인간들을 노예로 만들어서 그렇게 신전을 짓고 신들을 위해서 노동하고 봉사하고 하는 노예로 인간을 만들었다.

 

같은 창조신화인데 그 바벨론에서 발굴된 그런 석판에 나오는 그 창조신화는 도대체 이 신들이라는 존재가 인간을 만든 목적이 그렇게 노예처럼 일부려 먹어서 신들을 위해서 봉사하도록 그렇게 만들었다. 그렇게 되어있어요.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전에 무엇으로서 계획하시고 만들기로 작정하셨는가 하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자기의 아들들이 되도록 그렇게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 그리고 계획하셨다. 이렇게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창세전의 계획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자신의 자녀로 놀랍게 우리를 그렇게 만드시고자 하는 이런 계획들을 가졌기 때문에 이 계획을 성취하려고 하는데 누굴 통해서 하는 가 하면 오늘 에베소 1장 5절에도 누굴통해 일한다고요?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냥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기 아들로 만드시는 것이 아니고 누굴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만드신다는 것이에요. 누굴통해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피조물인데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까지 격상을 해서 그렇게 높임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에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서 그렇게 만들기를 원하셨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우리가 오늘 이성경의 진리를 기초로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땅에 무엇하러 오셨겠어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자기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되도록 만들기로 계획 하셨다면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이땅에 보내실때 그리고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실 때 무엇을 하러 이땅에 오셧을까요?

 

우리를 뭐 만들어주려고?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시켜 주시려고 이땅에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겠죠.

 

갈라디아서 4장을 봅시다.

 

4절 5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때가 차서 자기아들을 이땅에 보내어 주신 것은 율법아래 태어나게 하시고 여자 아래 태어나게 하신 목적은 무엇때문에 하나님 아들을 보냈다구요?

 

율법아래 있는 우리를 뭐만들어 주려고?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자녀가 될 권세를 주시기 위해서 때가 차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보내주신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또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우리에게 너는 의롭다 이런 칭의를 받도록 해주신 것도 더 궁극적으로는 단순히 죄용서 받고 단순히 의롭다 칭함받는 그런 차원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월등히 능가해서 이렇게 죄용서와 칭의를 얻은 목적 자체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뭐까지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끔.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게끔.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얻게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게 하실려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도 지시고 우리 대신에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시는 이런 일도 하셨다는 것이에요.

 

그러니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은 오늘 이 진리를 기초로 말하면 한마디로 어떻게 말할 수 있겠다구요? 예수님이 이세상에 오신 목적은 나를 무엇되게 하실려고?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나님의 아들들로 입양되게 하실려고, 하나님의 자녀로 하게 하실려고 예수님께서 오셨다 이렇게 이해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때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의 대표적인 것이 우리가 흔히 주기도문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예수님을 앞으로 믿게 될 바로 우리 교인들 예수를 믿게될 우리 신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너희가 하나님께 기도할때에 이렇게 기도하라.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을 부를때 어떻게 부르라고 가르쳐 주었어요? 아버지라고 부르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 단순히 조물주시여, 창조주시여, 위대하신 분이시여 선하신 분이시여 이런 호칭 정도가 아니라 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이제부터는 너희들도 아버지라고 부르라.

 

예수님께서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할 때 앞에 거룩하신 아버지여 뭐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그 속성을 형용사를 붙이긴 하였으나 의로우신 아버지여 이렇게 붙이긴 하였으나, 늘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나아갈때 하나님을 뭐라고 불렀어요? 아버지라고 불렀던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도 예수님 께서는 이제 너희가 나를 믿었으니 이제 너희가 나의 제자가 되었으니 이제 너희가 교회가 되었으니, 하나님을 너희의 아버지라고 부르라. 그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렇게 하나님께 부르면서 그 다음에 기도의 내용이 무엇이던지 간에 더 중요한 사실은 이제 나를 믿는 너희들은 하나님의 자녀가되었으니 이제 하나님께 나아갈때 하나님을 너희의 아버지라고 알고서 하나님을 너희의 아버지라고 믿고서 하나님께 무엇보다도 아버지로 말하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을 아버지처럼 믿고 아버지로서 그렇게 나아가라. 이렇게 가르쳐 주신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르쳐준 주기도문만 보더라도 에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신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주기도문에 제일 앞부분에 나오는 우리를 하나님 자녀 만들어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 만들어 주시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고 그래서 우리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에 가장 기본적인 것을 기도할때에 아버지라고 부르라. 그래서 우린 기도할때에 다른 용어들도 물론 쓰지만은 가장 기본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존재가 된 것이에요.

 

 

그래서 더 놀라운 것 한가지는 예수님께서 부활을 하시고 난 다음에 그 예수님의 몸을 만지려고 하는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놀라운말씀을 한가지 해주셨어요. 특별히 막달라 마리아에게, "마리아야 내가 지금 아버지께 아직도 올라가지를 못했는데 내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 " 이렇게 말하면서 " 내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그리고 이 사실을 네 형제들에게 가서 전하라" 예수님은 부활 하시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일뿐 아니라 너희의 아버지고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너희도 나를 통해서 하나님 자녀가 되었으니, 이제 단순한 예수님의 제자차원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를 부르는 호칭 자체가 바뀌었어요. 어떻게 바뀌었다구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려라. 예수님께서 예수믿는 우리들을 단순한 종이라 단순한 제자라 그런차원 만이 아니라 그런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제는 너희들이 나의 형제이기도 하다.

 

왜 이렇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시겠어요?

 

원래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에요. 창세전부터 예수님을 맡아들로 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예수님의 동생으로 만들어서 하나님께서 많은 아들들을 가지기를 원하셨던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목적을 이루러 오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다 이루었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님 믿는 나의 제자들을 내 형제들이라고 부를 수가 있게 된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하나님아버지와 하나님 아들되는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사역의 목적이 우리를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이 아버지이신 예수님뿐만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가운데 역사할 때 역사하시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무엇일 것인가?

 

우리로 하여금 뭘 가르쳐 주는 것일까요? 예수님 믿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고 알뿐 아니라 우리가 직접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주시는 것이에요. 우린 갈라디아 4장을 읽엇던 뒷부분 6절 7절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우리의 마음가운데에 보내어주신 가장 중요한 목적가운데 하나가 무엇인가 하니깐, 예수 믿으면 뭐 된다고 했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되는 것인데, 이 사실을 성령님께서 분명하게 믿도록 해주시는 것이에요. 이 사실을 분명하게 알도록 해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실제로 우리의 영혼이 담대하게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 이렇게 부를 수 있도록 우리를 만들어주시는 것이에요.

 

여러분 이것이 왜 놀라운 것인가 하면.  지금 예수님을 안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자기들이 믿는 신들이 종류가 많겠죠. 그런 신들을 향해서 호칭을 부를때에 무엇이 가장 자연스러울가요? 생각해보세요.

 

지금 이방인들이 불신자들이 자신들이 믿고 잇는 그런 신을 부를 때 어떤 호칭이 가장 자연스러워요? 만일 창조를 믿고 있다고 그러면 이세상을 만든 조물주시여.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해서 조그마한 것을 통치한다고 믿게 되면 바다를 통치하시는 신이시여. 뭐 이렇게 부를 것이고, 그 것보다도 더 구체적으로 우리 집안을 잘되게 해주시는 신이시여, 병을 고치게 해주는 신이시여. 뭐 이렇게 자기의 신들에게 부르는 호칭이 그렇겠죠.

 

아무도 자기가 믿는 신들을 향해서 그렇게 아빠 아주 사랑스러운 친밀한 관계를 표현하는 그런 애정이 담긴 그런 아빠라는 표현으로 그렇게 부르지는 못할 것이에요. 대개 신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내가 잘못하게 되면 신들에게 벌을 받을 것이다 하는 생각속에 아주 공포감과 두려움을 가지고 그렇게 나아갈 뿐이지 자기들이 믿는 신에 대해서 친밀한 아빠라는 용어를 가지고 그렇게 나가지는 못할 것이에요.

 

그런데 성령님께서 들어온 사람의 변화 가운데 하나가 무엇인가 하면, 진짜 성령님을 받은 사람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무엇인가 하면, 온천지 만물을 만드신 그 하나님을 왕으로서 두려워 할 뿐 아니라 그 두려움이 있지만 경외함이 있지만 그러나 마음 한가운데서 그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잇는

 

마치 세살 네살 다섯살 혹은 여섯살 우리 갓난 아이들이 그렇게 부모를 향해서 그렇게 아빠가 아니면 빠빠도 되겟죠. 빠빠라고 부를 정도로 친밀하게 또 자기 어머니를 부를 때는 맘마라고 부르는 아주 친밀함이 있겠죠. 그렇게 친밀함을 가지고 부를 수 잇는. 부친이시여. 이건 좀 다르잖아요. 부친이시여 하는 거랑 아빠 하는 거랑 다르지 않습니까?

 

그러니깐 우리가 성령님을 받은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내가 이제 예수님 믿었으니 하나님이 나의 아빠이기도 하시다 라고 하는 그런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아빠라고 부를 수 있도록 우리들에게 이 말해 주시는 것이다. 하는 것이에요.

 

하나님 아버지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하나님의 영인 성령님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를 결국 만들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를 무엇으로 만들기를 원하신다구요? 하나님의 자녀로.

 

그래서 하나님아버지는 이것을 계획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죄용서를 위해서 대신 벌받아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주기 위해서 우리 대신 의를 입으시고 순종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이루어주시고 그리고 성령님께선 오셔서 이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빠라고 아버지라고 그렇게 확신가운데 부르면서 나아갈 수 있도록 담대함과 용기와 지식과 믿음과 확신을 우리가운데 주신다.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 하심과 아들되시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여 주신 일과 성령님의 놀라운 일들을 통해서 삼위하나님의 합작품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이 되게 되는 것이다. 하는 것이에요.

 

본론 - 2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때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복은 무엇일까요?

 

갈라디아서 4장 7절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되면 가장 먼저 생기는 변화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게 되는데 그전에는 신자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대할때 어떤 분위기라는 것이에요? 종의 분위기.

 

이 종이라는 것은 노예를 한번 생각해보면, 노예라는 것은 옛날에 노예의 주인을 대하는 그 노예들의 태도. 내가 만일 이것을 순종하지 아니하면 노예주인의 회초리가 생각나서 늘 두려움에 떤 눈빛으로서 내가 잘못하다가 주인에게 맞지 아니 할까. 또 나를 굶기지 아니할가? 라고 하는 그런 두려움 가운데 주인을 대하던 그와같은 자세에서 아들은 그렇지 않죠. 아들이 부모와 함께 살면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있겠지만, 아들이 늘 부모를 볼때 그렇게 공포에 질려서 늘 노예주인을 대하듯이 그런식으로 대하는 부모는 없겠죠. 자녀의 마음속에는 좀 잘못해도 아빠가 한대 때려도 엄마가 나를 혼내도 나를 다 사랑하시니깐 그러시겠지 해서 좀 잘못을 해도 내가 나중에 다 고백하면 아빠가 용서해 주시겠지. 하는 그런 마음이 있는 것이에요.

 

만일 자식이 사소한 하나를 어겼는데 아빠가 나 때려 죽일 거야. 아빠가 나를 완전히 끊어 버릴거야 이렇게 공포 가운데 지내게 된다 그러면 부모도 자식도 문제가 있는 것이겠죠. 한대 맞긴 맞을 거야 그러나 아빠는 나를 잘되라고 그러시는 걸 거야 하는 이런 생각들이 있겠죠. 그게 자식의 마음이에요.

 

그래서 요즘에 많은 일을 하더라도 그냥 이제 직장에 취직을 했는데 그 사장의 아들하고 그냥 사장이 아닌 일반직원이 그 사장을 대할때 아들이 직원이고 아들이 아닌 사람도 직원인데 그 사장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겠죠. 같이 실수를 하더라도 같이 뭘 잘 못하더라도 자기 아버지가 사장인 그런 자녀가 회사에 다니고 있으면 뭔가 마음속에 담대함이 있을 것이고 그 아버지에 대한 그런 친밀함이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다를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 믿고 나게 되면 가장 먼저 바뀌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태도가 바뀌게 되는 것이에요.

 

마치 종처럼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무서워 하던 그런 관계에서 이제는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큰 사랑을 아빠라고 하는 표현속에 담겨져 있는 깊은 신뢰를 가지고 애정을 가지고 그렇게 하나님께 대할 수 있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기도로 하나님을 그렇게 부르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이젠 더이상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와 같은 그런 자세로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관계의 변화가 가장 먼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하는 것이에요.

 

본론 3 - 아버지로서 우리를 책임지시는 하나님.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되면 2번째 받는 복은 무엇이겠는가?

 

성경말씀을 한번 볼가요?

 

마태복음 6장 31-3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된다고 하는 놀라운 진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친근하게 마음속에서 부터 그렇게 대할 수 있는 것만이 아니고 그것이 끝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우리의 삶 전체를 아버지로서 책임져 주신다. 하는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일 불쌍한 자녀가 있다면 누군가 하니깐, 자기가 지금 우리 유초등부 아이같은 나이에 지금부터 생각을 내가 빨리 돈벌어가지고 내가 밥도 사먹고 옷도 해입고 학원비도 내고 해야 할 텐데 하면서 늘 인생살이 걱정에 초등학교 1학년짜리가 늘 머릿속에 뭘 먹을까? 뭘 마실까? 내가 어떻게 하면 돈을 벌지? 내가 어떻게 해야 먹고 살지? 이런 고민에 잔뜩 빠져 있다 그러면 그 애를 천재라 부르겠어요? 바보라 부르겠어요?

 

그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 한다는 것이 굉장히 천재 같기도 하고, 그러나 분명히 부모가 있는데 그렇다면 그 아이는 부모를 믿지 못하니깐 바보이기도 할 것이고 그럴 것이에요. 왜냐하면 우리가 이렇게 자녀를 다 기르는데 자기를 먹이고 입히는 것은 자기 책임이 아니라 이 부모가 성인으로 독립시키기 전까지는 부모가 책임 지는 것이에요. 이 아이를 뭘 먹일까? 어떻게 입힐까? 어떻게 교육시킬까? 그것은 부모의 자나깨나 고민이지. 이렇게 유초등부 아이들 초등학교 아이들 이런 아이들이 내가 뭘 마실까? 뭘 먹을가? 어떻게 앞으로 내 진로를 결정할까? 이런 고민을 하는 나이가 아니죠. 그것은 바로 부모가 입히고 먹이고 교육시켜주는 것을 다 책임 지는 것이에요.

 

마찬가지에요. 만일 불신자들이라면 아버지가 없는 고아원에 있는 아이라면 그러해야 하는 것이에요.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이 앞으로 나는 노력도 안해도 일도 안해도 뭐 다 알아서 누가 해줄거야 이리 생각한다면 큰코 다치는 것이죠. 고아원 아이들은 정말 빨리 그것을 깨우쳐야 하는 것이에요. 자기가 일해서 자기 스스로 자기 먹을 것을 챙겨야 하고 자기가 스스로 자기 인생을 개척해야 되고 빨리 고아원의 아이들은 그렇게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인생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마땅한 것이에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아니한 사람들 같으면 자기 인생의 책임은 자기가 져야 하는 것이에요. 자기 인생은 자기 것이에요. 자기 말처럼 자기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니깐 자기의 먹고 마심도 자기의 인생의 진로도 다 자기 책임과 자기 노력과 자기가 하는 열심으로 자기 인생을 책임져야 마땅한 것이니깐, 늘 걱정하고 염려하고 고민에 빠지는 것이 정상 적이에요.

 

만일 불신자인데도 도무지 인생살이에 걱정이 없다. 도무지 인생살이에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아무 염려 없이 살아간다 그러면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해야 되는 것이에요. 어떻게 도무지 무슨생각으로 아무염려도 없이 걱정도 없이 그렇게 될테면 알아서 되겠지 이런 생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일까? 무슨 배짱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일가? 이렇게 의아하게 생각을 해야 마땅할 것이에요.

 

그런데 예수믿고 하나님을 자기의 아버지라고 믿고 있는 하나님이 자기의 아버지가 되어준 그런 신자라면 거꾸로에요. 그런 신자인데 밤낮 걱정하는 것이 앞으로 내인생 어떻게 살지? 앞으로 내가 어떻게 먹고 살지? 늘 오늘 예수님 말씀처럼 나에게 먹고 마시고 내인생을 어떻게 살까? 에 대한 염려로 찌들어서 늘 얼굴에 그늘이 져있고, 늘 불안해 하고 초조하고 걱정근심으로 사로잡혀 있다면 그건 이상한 것이다. 비정상 적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말씀이에요.

 

'얘들아 뭘먹고 뭘입고 뭘마시고' 요즘 같으면 좋은 차를 사고 몇평짜리 집에 들어가 살고, 자식들 어느학원에 보내고 하는 이런 걱정은 물론 이방인들이 전문으로 하는 것이고 너희들도 이런것이 필요하다는 것쯤은 내가 안다. 너희들 살아갈때 내 자녀라고 그래서 먹이지도 않고 입히지도 않고 교육도 안시키고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신 것이죠.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들을 책임지기를 원하신다. 너희가 그런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미 너희에게 그런 것이 있어야 될 줄을 아는데 그런 걱정을 하는 것은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지, 내자녀인 너희들이 그런 걱정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네가 걱정하고 염려 할 것이 있다면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의를 위해서 영원한 새하늘과 새땅을 위해서 이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네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삶과 네가 전해주는 하나님의 자녀된 이 복음을 통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정말 이세상에서는 가장 좋은 아버지가 계시구나. 이세상에는 앞으로 영원히 좋은 나라에 영원한 좋은 아버지가 계시구나.

 

이사실을 어떻게 알릴 수 있을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정말 좋으신 아버지란 사실을 어떻게 내 주변 사람들에게 알릴수가 있을까? 그리고 내가 그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렇게 감사한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잇을가?

 

우리의 고민은 그런 고민이고 그런 걱정이어야 하지. 당장 자신의 진로에 대한 그와같은 부분이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와같은 모든 것들을 책임져 주시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혹은 한해가 시작되면서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계획 조차 세우지 말란 말은 아니에요. 한해동안 어떻게 일을 할까? 가계부를 어떻게 정리할까? 뭐 이런것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고, 그런것들을 다 해야 하고 또 자녀를 또 어느학교에 보내야 할까? 또 어디까지 교육을 시켜야 할 가? 어느 학원 보내야 할 까 하지 말란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런일들을 다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마땅한 바이나, 거기에 염려와 걱정과 불안을 빼라는 것이에요.

 

그러한 일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나보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하나님의 몫이다. 하는 사실을 우리가 믿을때 염려와 걱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사실은 이것을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었어요. 언제 가르쳐 주었죠?

 

너희의 먹고 마시는 것은 내가 책임지는 것이다. 광야 40년을 통해서 약 200만에서 300만명이 되는 사람들이 그들이 애굽땅에서 도시락을 싸왔으면 몇일분을 싸왔겠어요? 광야에서 먹을 양식을 몇일분 준비해 올 수 있겠어요. 그 200-300만이 먹을 양식을. 아마도 한두끼 정도 가져온 음식은 다떨어지고 말았겠죠. 그때부터 40년 동안을 그 광야에서 어떻게 이스라엘 사람이 먹고 마셨는가?

 

여러분 어떻게 먹고 마셨어요?

 

 매일 애굽에서 배달와서 매끼마다 40년동안 200만 300만 사람들이 그렇게 공수 받아서 살았나요? 배달받긴 받았어요. 누가 배달해 주신 것죠? 하나님께서 하늘 열어가지고 만나를 내려서 40년동안 그 백성을 먹였어요. 옷은 어떻게 했는가? 옷은 안헤어지게 하셨어요. 신발은 어떻게 했는가? 신발도 안헤어지게 하셨어요. 그리고 고기 먹고 싶을때는 메추라기좀 떨어 뜨려주고, 날마다 만나를 주고 물이 필요하면 바위를 쳐서라도 바위에서 물을 내게 해서라도 그들을 40년 광야동안에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죄짓다가 하나님께 벌받아 죽은 것은 여러번 경험하나, 굶어죽는 경우는 하나도 없어요.

 

얼어죽은 경우도 하나도 없어요.

 

하나님께서 왜 사십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을 통해서 그걸 보여주셨는가?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지금도 여러분이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삶이 광야 40년과 같은 시간이에요. 하나님께서 왜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한번 그렇게 40년 생활을 하게 하셨는가 하니깐, 바로 여러분에게 믿음을 주기위한 것이에요. 여러분이 죽기전까지의 이 삶이 그 광야와 똑같은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내 자녀를 특별하게 굶겨죽이지 않아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일 굶겨 죽인다면, 그것은 빨리 데려가고 싶기 때문일 것이에요. 우리가 교통사고 나서 데려가시거나, 병들어 데려 가시거나, 그렇게 데려가시는 방법이 다양하신데 그런 여러가지 방법가운데 데려가실 목적으로 굶게 해가지고 그렇게 그 수단으로서 하나님이 굶겨서 우리를 데려가실수는 있을 것이에요. 그런경우는 참 아마 제가 생각할때 교회사를 다 뒤져봐도 아주 희귀한 경우라 생각이 들어요.

 

교통사고로 병으로 각종 사고로 데려가시는 경우는 물론 있지만, 그런 종류중에 하나로서 굶겨 죽인다음에 데려가신다. 그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중에 하나이긴 하지만은 그거는 아주 비상한 시기가 아니면 하나님이 그리하지 않으세요.

 

그러니깐 우리가 한가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이 확신 속에는 무엇이 담겨있는가 하니깐. 하나님께서 내가 이땅에 살아있는 동안에 적어도 헐벗어서 얼어죽게 하신다든지, 굶어 죽게 하신다든지 그렇게 하시지 않을 거라고 하는 그런 확신이 깊게 있어야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한가지 여기에서 우리가 조심할 것은 그 반대로 광야 40년의 생활이 하나님께서 그냥 애굽의 갑부보다도 더 갑부 되겠끔 그런식으로 내일 햄버거 피자 콜라 소고기 불고기 다 그렇게 내려주시진 않았죠. 그런데 오해해가지고 '왜 하나님. 왜 만나입니까? 저 어저게 뭐먹었는지 아세요? 하나님? 만나 아닙니까? 저녁 뭐먹었습니까? 만나지 않습니까? 10년전에는 뭐먹었습니까? 만나지 않습니까? '

 

이렇게 해서 '자꾸 이러시기입니까?'

 

이렇게 나오면 하나님께서 조금 곤란하시게 생각하시는 것이에요.

 

'얘들아 지금 광야에서 만나가 어디냐? 너희가 정말 그러면 한번 내가 그렇게 메추라기 떨어뜨려줄게.' 그렇게 메추라기를 떨어뜨리는 일은 있어도, 오늘은 수박떨어뜨리시고, 또 내일은 파인애플 떨어뜨리시고, 그다음에는 양고기, 그다음은 생선, 이런식으로 그렇게 하시진 않는다.

 

광야니깐, 광야니깐, 광야이기 때문에 지금은 우리가 만나먹으면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온갖 오곡백과와 양고기 소고기 같은 그러한 산해 진미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주신다. 가나안땅에 데리고 가셔서 거기에서 젖과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지, 광야에 있는 동안에 젖과꿀을 떨어뜨리지는 않으신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새하늘과 새땅에 가면 여러분이 상상하지 못하는 엄청난 좋은 것으로 그야말로 여러분이 영원토록 하나님께 '이제그만' 이라고 할 정도로 그렇게 풍성한 산해진미를 하나님은 저땅에서 준비 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광야길을 걷게 하시는 동안에는 만나로 먹이신다.

 

그래서 우리가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에요.

 

'하나님 왜? 내가 만나는 알겠는데, 난 날마다 고기 먹고 싶어요.' 해가지고 도피하다가 그렇게 광야에서 쓰러진 사람처럼, 그러면 안된다는 것이죠.

 

그러나 혹시 근데 만나만 매일 주신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주신다라고 하는 확신 가운데 살아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사실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한다는게 뭐겠어요. 결국은 다 세상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처럼 먹자고 하는 건데, 또 살자고 하는 건데, 그게 우리의 관심사이고, 늘 염려거리이고, 우리의 공부하는 것도, 직장다니는 것도 잘먹고 잘사는 것에 모든 문제가 다있기 때문에 늘 그게 우리의 마음을 다 지배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적어도 광야길을 걷는 동안에 만나까지는 책임지고 주신다. 이생각을 한다 그러면, 그럼 여러분 우리가 그렇게 막 먹는것 가지고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그얘기에요.

 

그사실은 홈리스 하시는 분들 중에서도 잘하시는 분들 얘기 들어보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이 그거래요. 무슨 신경쓸 필요가 있나, 그냥 밥상 떨어뜨리면 깡통하나 가지고 와서 한끼 먹을걸 얻어오고, 또 그렇게 집걱정 할 필요가 있나, 그냥 비오면 지붕 넓은 집으로 가서 피해있다가 또 뭐 더우면 더운데로 바람부는 시원한 계곡에 가서 놀다오고 걱정거리가 없다는 것이에요.

 

집걱정, 애들 교육시킬 걱정, 무슨 걱정거리가 없이, 그냥 필요하면 나가서 얻어와서 먹으면 좀 아까 말한 것처럼 풍성하지는 않지만은 그러나 아 이생활이 너무 좋다. 그래서 그랫다는 거 아닙니까?

 

이 거지 부모님이 거지 아들 데리고 가다가 어느 부자집에 불이 났어요. 막 그냥 혼비 백산해가지고 울고 불고 아빠가 애한테 얘야 우린 저럴필요도 없어 얼마나 좋겠냐, 이렇게 집이 탈것도 없으니깐 얼마나 좋고 불타가지고 우리가 눈물흘릴 일도 없으니깐 얼마나 좋냐.

 

물론 우리가 생각해보면 불탈지언정 그렇게 좋은 집에 살다가,,

 

이런식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러니깐 지금이 좋다는 이야기에요. 그래서 먹을 걸 걱정 없이 그렇게 산다는 것인데, 사실은 우리는 그런 면에서는 거룩한 거지들이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책임진다고 믿기 때문에 일안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일을 하더라도 내 인생을 불안가운데 근심가운데 초조함 가운데 그렇게 거기에 매여서 사는 것으로 부터는 해방된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다고 하는 엄청난 진리 가운데는 우리의 삶을 책임진다고 하는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본론 3.1 - 아버지로서 징계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한가지 일은 조금 싫어해야 할 것이 있어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되면 이렇게 우리의 생활을 보호해주고 책임져 주시지만 한가지 뭐는 하시나요? 우리 행동을 잘못했을때 징계하시기도 하신다.

 

우리한번 신명기 8장 5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이 광야의 이야기 인데요. 광야시절의 이야기인데. 하나님께서 이 광야에 먹을 것을 주시기도 하시지만 뭐도 하신다구요? 잘못했을때 죄를 지을때 이때 징계도 하신다. 그래서 잠언에서는 이렇게 말해요.

 

잠언 3장에서는 내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

 

 그래서 이구절을 히브리서 기작 받아가지고 적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예 이렇게 말해요.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아들이 아니니라.

 

이상한 말씀이죠. 우리가 생각할때는 부모가 자녀를 징계하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는데, 오늘 히브리서 말씀은 부모가 자식을 징계하지 아니하면, 혹시 사생자인지모른다. 주워온 아들인지 모르고 진짜 자식이 아니기때문에 아예징계하는 것을 포기하는 줄 모른다. 진짜 참아비라면은 자녀를 잘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징계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왜 이렇게 하시는가 하니깐,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는 목적 자체는 그냥 잘 먹는 거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격과 삶 자체가 어떻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면 우리를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의 수준에 걸맞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길 원하는 것인데, 말이 너무 거칠어요. 맨날 입을 벌리면 욕하고 손이 너무 거칠어요. 손만 벌렸다 하면 폭력이고, 그냥 훔치고 그리고 다른사람과 싸우고,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그와같은 이 삶에 수준이 형편 없는 거죠. 그럴때에 아버지로서는 자녀들에게 잘 되게 윤리적으로 인격적으로 성품적으로 성숙한 사람 만들기 위해서는 징계가 필요하다.

 

그래서 자녀를 기를때 이런 자녀는 아무도 없어요. 태어난 순간 부터 부모가 꾸짖지 않아도 알아서 때되면 뚝그치고 잘시간 되면 자기가 알아서 자고, 또 알아서 자기가 또 자기가 알아서 밥먹고 이딱고 공부하고 자지가 알아서 그렇게 하는 그렇게 한번 부모가 꾸짖지 않아도 태어나서부터 시집 장가가기 전까지 그런식으로 자기 할일을 척척척 그렇게 하는 자녀는 아무도없어요.

 

우리 자녀의 본성자체가 태어날때부터 우리 성경에서 가리키는 바와 같이 죄가 있기 때문에 태어나서 부터 땡깡 부리고 해서는 안될 다른 애들이랑 다투고 자기가 더 많이 가질려고 악쓰고, 제시간에 잠을 안자고  땡깡 부리면서 놀라그러고, 또 그런식으로 그냥 이 아이가 이렇게 크면 안되겠다. 이렇게 크다가는 정말 막크겠다.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아이로 자라겠다. 그럴정도로 우리 아이들은 100% 누구나 할 것 없이 자랄때 그렇게 바르게 가야할 길에서 부터 이탈 되는 과정이 있어요.

 

그때에 진짜 부모라면 그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그럴때는 꾸짖어야 하는 것이에요. 아니다. 얘야 너가 하는 행동은 잘못되었다. 그렇게하면 안되는 것이야. 라고 교정 시켜 주는 그것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럼 둘중에 하나에요. 자식에 대한 미래에 전혀 관심이 없는 부모거나, 아니면은 그냥 그런 관심은 있다 할지라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지를 전혀 모르는 부모이거나 둘중에 하나일 것이에요.

 

자녀들을 잘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킨다고 하는 것과 더불어서 자녀가 빗나가는 행동을 할때는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참 부모가 해야할 역할이에요.  그래서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신다는 얘기는 무슨 뜻인가 하니깐, 에수 믿고 신자가 된 다음에도 마음대로 살게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뜻이에요.

우리가 아주 잘못된 행동을 할때 하나님이 우리를 깨우쳐 주십니다. 구약시대에 보게 되면 다윗같은 인물이 그랫어요. 하나님 자녀인데 잘살때도 있지만 다윗같이 하나님 말씀에 잘 순종하는 정말 신앙이 좋은 선배도 그렇게 간음죄를 짓고 살인죄를 지어서 그래서 하나님이 너는 내자녀 이기때문에 너가 알아서 해라. 이게 아니에요. 어떻게 하죠??

 

선지자를 보내서 깨우치는 것이에요. 너 잘못했다. 그리고 벌을 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다윗으로 하여금 자기의 잘못이 얼마나 큰지를 깊이 깨닫고 눈물로 회개해서 다시는 그런 죄를 안짓도록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는 것이지, 그냥 죄를 지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마음대로 방치해서 더많이 많이 그런식으로 너 마음대로 살아라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야곱과 에서를 보게되면은 똑같은 한배에서 나온 자식이지만, 하나님이 야곱은 자기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에서는 자기 자녀를 삼지 않고 포기했어요. 이 두사람 사이가 확연해요. 근데 그 이후에 성경의 이야기는 어떤가 하니깐, 하나님께서 에서를 따라가면서 에서에게 징계주고 에서에게 하나님께서 채찍질 하시고 에서에게 꾸짖고 그런것이 없어요.

 

에서가 잘해서가 아니겠죠. 하나님은 자기 자녀가 아니니깐 이 땅에 사는 동안 자기 마음대로 살도록 어느정도 방치 하시는 것이에요. 그러나 야곱은 그렇지 않아요. 야곱은 하나님앞에 잘못된 삶을 살았을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뒤쫓아 가서 계속해서 야곱이 뭘 잘못했는지를 깨우쳐주고 야곱으로 하여금 회개 하게 만들고 네가 이렇게 살아가서는 안되겠다고 깨우치도록 하나님께서 그를 징계하신다.

 

그래서 우리 신자들이 정말 진짜 하나님의 거듭난 사람이라면 우리의 삶을 엉망진창으로 살때에 하나님께서 시간차는 있겠지만 반드시 우리를 어떤형식으로든지 간에 징계하신다. 그 형식은 하나님이 워낙 방법이 많으시기때문에 저는 다 알길이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징계하셔서라도 그를 깨우쳐서 돌이키게 하신다. 하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좌우를 훓어도 조심해야 하는데 갈수록 그런것을 많이 느껴요. 그래서 우리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잘해주겠다고 하는 마음은 지금도 예전이나 다를 바가 없어요. 원래 부모가 자기 자식을 잘못되게 하려는 부모가 있을가요? 옛날부모나 지금 부모나 하여튼 자녀들에게 잘 교육시키고 잘 먹이고 잘입히고 하는 것은 그건 차이가 없는데 한가지 다른 것이 있다고 그러면 예전의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이 잘못하면 그것을 꾸짖었어요. 꾸짖어가지고 그런 행동들을 좀 교정 시켜서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안주도록 그런 아이가 되도록 그렇게 교정하는 일들을 그게 뭐 교육을 많이 받은 부모이거나 안받은 부모이거나 그런 노력을 많이 햇어요.

 

그런데 상대적으로 요즘 많은 젊은 부모들은 예전 부모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꾸짖는 일은 잘 하지 않아요. 하더라도 성의가 없어요. '그러지마, 얘야 그러지마'  이러고는 아무것이 없어요.

 

그러니 애가 부모가 그정도로 해가지고 들을 것 같으면 걔가 뭐 완전히 천연 기념물이죠. 천연기념물이 아니라 그런 애는 없어요. 그러니깐 그런 애를 자꾸 많이 만들게 되면 나중에 부모에 대해서도 불효하고 그가 살아가는 공동체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고 하여튼 문제를 많이 일으켜요.

 

근데 그게 어느 한사람같으면 이해하겠는데, 대부분 그러니깐 하여튼 제가 속이 좀 터져요. 터져서 앞으로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집에서 교육을 잘시켜요. 교육을 잘못시키게되면은 아무리 교회에서나 학교에서 뭘 해볼수가 없어요. 그래서 다른 위대한 교육을 시켜야 되는게 아니고 자기 수준에 볼때 애가 거칠고 좀 다른 애들과 관계를 못맺고 하면 어릴때부터 그걸 교정시켜서 애로 하여금 이렇게 행동해서는 안되는구나, 행동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지 그냥 막 땡깡 부리는 데도, 길바닥 누워서 이렇게 하면 그걸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어린아이를 둔 부모가 많으시기때문에 공식적으로 말씀을 드리는 건데 제가 저희 교회 영유아 부와 유초등부를 담당하는 교역자들에게는 반드시 당부를 합니다. 애들이 태도가 바르지 않거나 그러하면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고 교정을 시켜줘라. 교정을 시켜서 분명히 오냐오냐 하지말고 끌려다니지 말고 분명히 잘못된 것을 가르쳐라. 그래서 만일 그 가르치는 것이 불편한 부모가 교회를 떠나더라도 나는 상관 없다. 바르게 애들을 교육하려고 하는 그게 마음이 상해서 떠나면 그런 교인들과 난 함께 살길 원치 않기때문에 얼마든지 교회를 떠나가도 상관 없으니깐 확실히 끌려다니지 말고 애들을 잡아라.

 

제가 이리 주문을 해놨기 때문에 다시 공표를 합니다. 혹시 만일 여러분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애들을 저희가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이대로 두면 안된다. 교회가 전멸한다고 하는 그런 생각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인데, 한계가 있어요. 일주일에 1-2시간 가지고 어떻게 바로 잡겠어요? 대부분의 시간동안에 부모님이 위대한 교육이 아니라 그냥 기본적인 그와같은 태도 정도를 가르쳐 주시면 좋겠어요.

 

그래서 애들이 교육을 받을때 혹시라도 만약에 우리 선생님들이나 우리 교역자들이 애들에 대해서 벌줄때 그럴때 여러분 감사해야 되는 것이에요. 내가 그것을 못한 것을 그래도 일주일에 하루라도 대신해 주는 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 교회가 매일 애들 벌주는 교회? 그건 아니에요.

 

교육하다가 그럴 사항이 발생할때를 그냥 끌려 당기지 말고 단호하게 하라는 것이에요. 그러니깐 그런일들에 여러분이 혹시 부닥치실때 어려워 하지말고 정말 감사하다. 원래 이렇게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해주시기를 바래요.

 

그래서 이번에 우리가 수련회 할때에 제가 물어보니깐, 다른 곳에서 온 3명의 여전도사분들이 깜짝 놀랐대요. '이럴수가 있느냐.' 어떻게 해서 그러냐 물어보니깐, 저희도 애들을 보면 성경이 좀 강한 애들이 있잖아요. 흔히 우리가 말할때 우리가 마음 준비를 하고 애들을 교육시켜야 하는 그런 애들이 있거든요. 그럼 인제 전도사님들이 '그런거는 우리 애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건 그냥 너무 너무 좋은 애들인데 왜그러냐고? 순한 애들인데 왜그러냐고 이랬다는 것이에요. 설교를 듣는데 애들이 딱 설교시간에는 집중해가지고 물론 어린아이들은 할수없겠지만, 유초등부같은 경우에는 듣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가지고 우리 교회애들은 설교를 제가 하면 다 이렇게 뒤집어지고, 그래서 애들 눈 맞추지 않고 의례적으로 그냥 애들이니깐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설교할때가 대부분인데

 

여기는 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 애들이 질문하면 대답다하고 물어보고 그러니깐 너무너무 이 어린 아이들이 참 놀랍다. 자기들이 지금 지도하고 있는 교회의 분위기 봐서는 참 기이할 정도로 놀랍다. 이렇게 했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 수준 차이라는 것이 내가볼때 뭐 그리 대단하겠어요? 다시 말하면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오늘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듯이 우리를 징계하는 목적 자체가 우리가 잘되라고 하시듯이 우리가 자기들이 좀 거칠게 잘못한다고 할때는 바로잡아주자.

 

그 바로 잡아주는 게 꼭 회초리 대라는 뜻이 아니에요. 징계라는 것 자체가 교정시켜주라는 애기니깐, 그 수단이 회초리건,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는 애들은 회초리보다는 밥 굶기는게 낳겠죠. 너 오늘 하루 밥끈어. 이런식으로 또는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면 못돌아 댕기게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고, 또 어떤 아이에게는 회초리를 댈 수도 있어요. 아무리 굶겨도 말안듣고, 아무리 못돌아 댕기게해도 말을 안들을 때는 그때는 회초리 가지고 그렇게 살점에 박히도록 해야 애가 확실하게 그렇게 바꿀수 있으니깐, 방법은 여러가지이나 어쨋든 그러한 행동을 하면 안된다. 하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고치도록 그렇게 교육을 시켜야 된다.

 

그래서 사실 뭐 저희도 자녀를 둔 부모로서 제가 말한대로 잘 안되요. 해도 안될때도 있고, 애라는게 쉬운거겠어요. 애는 강적인데, 부모생각대로 안되는 것이지만은, 그러나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의 하나의 표현이다. 그것이 우리 주일학교 애들도 부모님이 자기를 혼을 안내면은 우리 엄마 아빠 맞아? 이렇게 물어보세요. 혹시 나 주워온거 아니야?

 

오늘 성경에 보니간 하나님 아버지는 자기 사랑하는 자식이 말 안들을때는 징계하신다고 그랬는데 아빠 왜 나 말을 안들어도 왜 징계안해요? 왜 안꾸짖어요? 아 한번도 회초리댄적이 없어요? 혹시 나 엄마아빠 아들 아닌가요?(웃음)

 

이렇게 해봐야 하는 것이에요. 그러나 진짜 좋은 엄마아빠는 잘할 때도 있지만, 자기가 땡깡부리고 말썽피우고 다른 애들이랑 싸우고 욕하고, 어른한테 인사도 안하고 이러면, 엄마아빠가 너 그러면 안되 하고 혼을 내야 진짜 좋은 엄마 아빠인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징계를 받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본론 4 - 하나님 나라의 상속을 받음.

 

여러분 마지막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상속을 받는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