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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거인/소교리문답

15. 죄가 초래한 비참한 결과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의 좋은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날마다 공급해주시며, 또한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그 풍성한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께 되돌릴뿐 아니라, 우리가 함께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우리 지체들에게 하나님의 그 사랑을 나누어주기를 원하시는 것 감사합니다. 우리가 죄악때문에 비록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을 제대로 사랑할수없게 되었사오나, 다시금 우리주님과 성령님을 보내어주셔서 우리 안에 새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갈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것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실패를 보게해 주시고, 하나님의 복의 복을 다시 한번 기억할 수 있는 복된 아침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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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천국의 모형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중에 하나는 바로 가정일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되 100% 자기의 전부를 주듯이 그렇게 아내를 사랑하는 그런 남편이 있고, 또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에 대해서 자신의 전부를 드려 사랑을 하고, 또 100% 순종하는 100%사랑하고 100%순종하는 그런 부부가 있습니다. 또 자녀가 있는데 자녀는 부모님에 대해서도 100% 신뢰 합니다. 부모님이 하는 말씀이라면 그대로 다 믿고 100% 부모님께 순종을 합니다. 그리고 형제 끼리도 100% 우애해요. 형님 먼저, 아우먼저 하면서 서로 자기 자신 보다도 형제를 더 챙기는 정말 끔찍하게 서로 서로 100%를 다 서로서로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가정이 만일 이 땅에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시고, 특별히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다음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사랑으로 충만한 그런 하나님 나라에 대한 모형을 사실은 이 가정을 통해서 그렇게 만들어 준 것이죠.

 

그런데 한 사람이 한 아들이 너무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서 부모를 믿지를 않아요. 내가 언제 당신들이 나를 낳은 것을 본적이 있냐고, 나는 당신들을 내 부모로 인정할 수 가 없다고 하면서 아예 부모를 부모로 그렇게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아요. 그리고 괜히 부모에 대해서 화가나서 그렇게 부모를 미워합니다. 그리고, 부모를 미워할 뿐 아니라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은 하나도 지키질 않아요. 사사건건 그렇게 어깁니다. 그리고 다른 형제들에 대해서는 폭력을 행사하면서 그렇게 억박지르고 빼앗고 그렇게 하는 아이가 생겨나면 곧 그 가정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콩가루 집안이 되는거죠. 아주 가정이 안좋아 지는 겁니다. 그리고 가정이 파괴가 되게 되는 거죠. 원래 가정으로 부터는 너무나 많이 변질된 그런 가정이 되고 말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창세기 3장을 읽을때 우리 인간 세상속에서 발생한 일이 바로 그런 겁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들어서 에덴 동산 기쁨의 동산에서 그들을 넣으시고, 아담이 하와에게 너는 나의 살중에 살이요. 뼈중에 뼈다. 이렇게 기뻐하면서 서로 사랑하고, 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좋아하면서 사랑하고, 순종하던 그런 관계는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버리고 지금 완전히 아담과 하와 사이에도 또 아담하와와 하나님 사이에도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겨나게 된것을 우리가 읽어 보게 됩니다.

 

이건 바로 인간이 지은 죄에 결과로 생긴 비참, 우리가 다른 말로 말하면 죄를 지으므로 받은 그런 형벌을 의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가정에서 우리 아이들이 명백하게 부모님께 죄를 지었을 때 부모님이 자녀들을 어떻게 해야 마땅하겠습니까? 예를 들어서 부모가 이 자녀에게 자식이 부모를 막 욕해요. 욕하고, 말듣지 않고, 그렇게 자기의 마음대로 하는 그런 자신을 볼때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래 니가 한 행동이야 니것이니깐, 니 마음대로 해도되' 이러면 안되겠죠.

그 부모가 그럴때 자녀에게 어떻게 해야 될까요? 부모에게 대들고 욕하고 불순종하고 하는 만일 그런 애가 있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 까요?

혼을 내는게 정답인 것이에요. 왜냐하면 일단은 얘 부모가 자식에게 말로 하겠죠.' 너 그러면 안되.' 말로써 혼을 내야 되겠죠. 근데 그 버릇이 고쳐지게 되면 되는 거죠. 그런데 말로 해서 고쳐지지가 않아요. 그러면 '여기 손들고 서있어' 하면서 벌을 줄수도 있고, 그래도 말을 안듯고 계속 잘못을 범해요. 그러면 회초리를 들수도 있겠죠. 그래도 말을 안들으면, '나가' 이렇게 해서 집에서 쫓아내고, 그래도 말을 안들으면 ' 호적을 파가' 완전히 집안의 뿌리로부터 잘라내가지고, 그렇게 완전히 추방을 시켜버릴 수도 있겠죠. 물론 학교에도 마찬가지에요. 학교에도 학생이 열심히 학교 학생으로서 생활 해야 되는데 자꾸만 학생이 그렇게 학생의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많이 할 때 선생님들이 어떻게 해야 학생을 교정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맨날 해온것처럼 수업끈나고 화장실 청소하라고 하든지 운동장 10바퀴 돌라고 하든지, 그래도 안되면 또 역시 혼을 내고, 그래도 안되면 일주일 정학. 그래도 안되면 퇴학을 시켜버리게 되겠죠.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에요. 괜히 길가다가 좋은 차가 있다고 긁어 놓고 송곳을 찔러서 타이어 펑크내고 하고 갔어요. 또 괜히 그러다가 너무 눈이 예쁘게 생겼다고 그냥 때려가지고 눈을 멍들게 만들었어요. 아니 이렇게 하는 사람을 그냥 니 팔이니깐, 니손이니깐 니가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 이렇게 되겠습니까? 죄를 짓게 되면 피해가 가게 되는 법인데 그를 붙잡아다가 피해를 입힌 만큼 보상을 해야 공평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국가도 사람들이 죄를 지어서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입힐때 그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해서 보상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형벌이에요. 그래서 가벼운 죄를 지었을때는 벌금형이죠. 조금더 무거운 죄를 지으면 감옥에 격리를 시켜요. 조금도 아주 심각한 죄를 짓게 되면 오랫동안 격리하고, 아주 무거운 죄를 짓게 되면 사형을 시켜서 이땅에서부터 이렇게 완전히 격리를 시키는 그런 형벌을 가하게 되죠.

 

왜? 이런 죄에 대한 형벌이 있는가 하니깐. 그래야 이세상의 공의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죠. 만일 죄만 있고, 법이 없다면, 이세상은 뒤죽박죽이 될것이에요. 그리고, 공의가 없게 될 것이에요. 죄가 판치게 될것이에요. 아무도 죄에대해서 그렇게 벌주는 사람이 없다면 이세상은 온통 죄를 짓는 무법천지가 될 것이고, 죄가 만연될 수록 그렇게 인간관계나 모든 것들이 점점 파괴되고 말 것이에요. 그래서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이 될려고 하면 죄값을 정확하게 이 보상이 이루어져야 바른 질서가 잡힌 그런 세상이 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들에게 사람들이 죄를 지엇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어떤 벌을 내리셨는가?

거꾸로 말하면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죄를 지엇을때 어떤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소교리 문답에서 다루고 있어요.

 

19. 타락한 인간에게 생긴 비참은 무엇입니까? ( What is the misery of that estate whereinto man fell?)

 

답 : 인류는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놓여서, 세상에서는 비참하게 살다가 죽고, 지옥에서는 영원히 고통받게 되었습니다.

 

answer : All mankind by their fall lost communion with God, are under his wrath and curse, and so are made liable to all miseries in this life, to death itself and to the pains of hell forever.

 

타락한 인간에게 생긴 비참이란 말은 다른 말로 말하면, 우리의 죄값으로 받게 된 형벌을 가리킵니다.

이 질문을 바꾸면 인간이 죄를 짓고 난 다음 하나님께로부터 받게된 벌은 무엇입니까? 그렇게 질문을 약간 바꿀수 있겠어요.

크게 보면 2가지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가지는 원래 우리가 가지고 있던 좋은 것들을 잃어버렸어요. 원래 죄 짓기 이전에 가지고 있던 좋은 것들을 잃어 버린게 있어요. 잃어 버린게 뭡니까?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을 잃어버릴뿐 아니라 오히려 원래 가지고 있던 것으로부터 아주 안좋게 적극적으로 나쁘게 변화 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하니깐, 하나님께로부터 뭘받게 되었어요? 저주와 진노,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의 내용을 크게 3가지로 말할 수가 있는데 그다음부터 나온 내용이에요. 현세 이세상에 사는 동안에 온갖 비참한 일들을 겪게 됩니다. 살아있는 동안에, 살아있는 동안에 온갖 안좋은 것, 비참한것 나쁜것 불행한것 이런 것들을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것 이게 바로 죄의 결과 입니다. 그리고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두번째 뭡니까? 현세의 온갖 비침뿐만 아니라 뭘당하게 되요? 죽음. 우리의 몸이 죽음을 맛보게 됩니다. 죽는것, 우리가 죽는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우리가 받은 형벌의 두번째 내용이에요.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에요. 죽으면 우리가 죽는 것으로 하나님께 지은 죄를 모두다 벌을 다 받고 끈나는 것이 아니에요. 더 심각하고 중요한 것은 세번째에 있어요. 뭡니까? 지옥의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지은 죄값으로 죄의 벌로써, 전체적으로 오늘 이 소교리 문답 19번은 4가지를 말하고 있어요.

 

1. 원래우리가 가지고 있던 하나님과의 그런 교제가 끊어짐.

2.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 중에서 이세상에 살아있는 동안에 무엇을 경험? 온갖 비참한 안좋은 것들을 경험하는 것들이 다 그 죄의 값으로 생긴 것.

3. 우리의 몸이 죽는 것, 죽음이 바로 그 벌가운데 하나임.

4. 마지막으로 죽고난 이후에 영원한 고통을 지옥에서 영원히 그렇게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우리 인간이 죄를 짓고 난 다음에 생긴 그런 결과 입니다.

 

한 목사님이 주일날 교인들에게 설교를 하면서 오늘 저처럼 성경이 말해주는 죄와 이런 심판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근데 한 성도님이 이의를 제기 했어요. ' 아니 목사님. 좋은 긍적적인 힘, 긍정적인 말 웃음. 이런것이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부정적으로 죄와 죽음의 심판에 대해서 설교할 수 가 있습니까? 취소하세요. 취소하시고, 좀 긍정적인 그런 설교를 해주세요. 이렇게 이의를 제기 했습니다. ' 혹시 여러분도 그렇게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이 목사님이 잠깐 들어갔다가 뭔가를 하나 가지고 나왔어요. 병을 하나 가지고 나왔는데 그 병에 무엇이 쓰여있는가 하니깐, 빨간 글씨로 독약- 먹으면 죽음, 이렇게 경고의 표시가 적혀있었어요. 그래서 그것을 그사람에게 보여주고 제가 만일 다른 사람에게 이거 마시면 건강에 아주 좋은 겁니다. 몸이 아주 좋아져요. 이렇게 말하면서 다른사람에게 주면 되겠습니까? 하니깐, 그성도가 절대 안되죠. 아니 안되죠. 그러면 큰일 나는 거죠. 이렇게 답변을 했어요. 그러자 목사님이 성경에서 사람이 죄를 지으면 죄값으로 죽는다고 하는 지옥의 형벌을 받는 다고 하는 경고를 안해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중요한 경고에 대해서 마땅히 알려줘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를 해주었다고 그래요.

이해되시죠? 우리가 오늘 왜 이것을 성경을 또 살펴보고 우리가 함께 설교를 하고, 들어야 하는 지를 알수 있을 것이에요.

 

우리가 한번 아까 읽었던 본문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창세기 3장

 

7절,8절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지금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난 다음에 무엇인가 변화가 생겼어요. 그런데 이 변화는 안좋은 변화였어요. 무엇인가 하면, 자기들의 벗은 것을 깨닫게 되고, 쉽게 말하면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리고,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되었어요. 하나님께서 먹지말라고한 그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따먹고 난 다음에 부끄러움이 수치심이 양심의 가책이 이들가운데 찾아오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수치심과 양심에 가책이 생기자 그 전에는 하나님에 대해서 정말 기쁘고 감사하고, 사랑스러웠던 그 하나님이 갑자기 두려워 지기 시작했어요. 무서움이 찾아왔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도망치고 숨는 이런 일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렇게 오늘 성경이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소교리 문답 19번에서 나온 첫번째 뭐와 연결 될까요? 하나님과의 교제로부터 끈어지게 된 하나님과의 교제가 상실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아마도 아담과 하와가 최초의 지음 받았을때 오늘 우리가 입은 이런 옷같은 옷은 없었겠죠. 그러나 아담이 자기의 몸이 벗은 것을 알고, 그렇게 부끄러움을 느꼇다 하는 이야기는 무엇을 말해주는 가 하면, 한번 7절을 다시 봅시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지금 죄를 짓고 난 다음에 이들의 눈이 밝어졌다라고 말했는데 이 눈은 어떤 눈을 말하는 것일까요? 지금 우리가 병원엘 가서 시력검사 할때 쓰는 이 우리가 달고 있는 육체의 눈을 가리키는 것일 까요? 그렇지 않죠. 지금 이들의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갑자기 아담과 하와의 육신의 눈이 갑자기 밝아졌다. 그런뜻이 아니에요.. 지금 이 성경의 의미는 이 육신의 눈이 아니라, 무언가 이 아담과 하와의 마음의 눈이 새롭게 밝혀졌는데 우리가 다른 용어로 말하자면 양심의 가책을 깨닫게 되는 그런 일들이 그들 가운데 생겨나게 된것이에요. 이것이 잘못했구나, 우리가 잘못을 했구나 이렇게 해서는 안되는데, 우리가 범죄했구나, 우리가 하나님말씀대로 안먹어야 할 것을 사단의 꾀임에 빠져가지고 이것을 먹었더니만 이것이 잘못 되었다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양심의 가책이 그에게 생겨나게 되고, 이것이 잘못됫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런 눈이 밝이 지게 되었다. 그런 뜻이에요.

 

그래서 여기에 자기들의 눈이 밝아져서 부끄러움을 보았다는 얘기는 단순한 자신들의 몸이 아무것도 안입엇음을 할때 이런뜻이 아니라 이 이야기는 무엇인가 하면 본디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었을 때에 오늘 우리와는 다른 최초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뭘 줬다고 했어요? 그들에게 1.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2. 본래 의와 , 3. 본래의 거룩함을 그들에게 주었는데 그것이 박탈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에요.

 

자기들 속에서 이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고, 하나님을 좋아 할 수도 없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도 없는 본래가지고 있던 그런 거룩함과 그런 의를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죠. 우리가 또 다른 말로 표현 하자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래 아담을 무엇으로 만들었다고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었다고 그랬는데 자기들 속에 그 하나님의 형상이 그렇게 잃어버린 바 되었음을 깨닫게 되는 그런 일들이 그들 가운데 생겨났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렇게 자기들의 벗은 것을 알고서 가장 먼저 한 행동이 무엇인가 하니깐. 하나님을 피해 숨는 것이었어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자기들 사이에 무언가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기뻐할 수 가 없게 되었어요.

 

여러분 이것은 우리도 비유하자면 그런일들을 경험할 수가 있죠. 우리가 상대방에게 아주 심각한 잘못을 짓고 나면 그사람 보기가 겁이 나요. 그사람을 피하게 되요. 왜냐하면 내가 지은 이죄가 양심에서 가책을 일으켜가지고, 내가 그사람 앞에 떳떳하게 설수가 없어요. 그사람에게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나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전까지는 굉장히 좋은 관계를  유지했는데, 갑자기 그사람을 피하게 되는 그사람으로 부터 숨고 싶은 이런 일들이 우리 대인 관계속에 일어나게 되죠.

 

지금 죄가 초래한 가장 첫번째 결과는 무엇인가 하니깐, 바로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관계에 금이 간것이에요. 이상기류가 발생한 것이에요.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그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나아갈수가 없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렇게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 줍니다.

 

그래서 그 해결책은 무엇인가 하면, 사실 이렇게 나와야죠. 하나님 앞에 ' 하나님 저희가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 하나님 우리가 정말 씻지 못할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주십시요.' 이렇게 나가지 않고, 그냥 자기들 사이에 아담은 하와를 하와는 아담을 의식하면서 자기들 사이의 관계만을 서로 창피하지 않게끔 평행유지를 위해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릴려고 하는 그런 행동을 보이지, 하나님앞에 피하게된 숨게된 도망치게된 이런상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달라고 나아가지를 않아요.

 

지금 우리 인간이 죄를 지은 결과로 첫번째 생겨난 것이 무엇인가 하면은 본래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풍성하고 좋아야할 그런 관계를 잃어 버리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바꿔말하면 하나님과 관계가 불편하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안좋은 관계로 바뀌게 되었는데, 심지어는 원수관계로 바뀌게 되었어요. 원수라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그런 관계로 바뀌게 되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이상한 것은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리게 되면, 다른 사람사이에 관계도 곧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요.

 

우리한번 11절 ,12절을 읽어볼까요?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지금 이 아담이 하나님께서 너 왜 그랬느냐고 하는 질문을 받게 됬을때 아담은 솔직하게 하나님 제가 잘 못했습니다. 큰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 용서해 주십시요. 이렇게 회개 하는 마음으로 나가지 않고, 그 책임을 다른사람에게 떠넘겨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한테 주신 이 여자, 바로 이사람때문에 내가 죄를 짓게 되었나이다. 자기가 대표고 자기가 머리고, 모든 책임은 자기한테 있는 것인데, 내가 대표로서 잘못을 했습니다. 이렇게 말해야 마땅한데 이 자신의 죄책감을 누구한테로 떠넘겨버리는가 하니깐, 자기는 별로 죄가없고, 잘못이 없고, 바로 나에게 붙혀준 이 여자가 나한테 이거 먹으라고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내가 먹게 되었나이다. 하면서 바로 자기의 이 책임을 전가시키는 다른 사람 핑계를 대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 핑계가 그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이인 아내에게 핑계를 댑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관계가 잘못되었을 때 생겨나는 것이 다 이런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옛날에 사울이라는 임금에게 하나님말씀을 불순중해서 왜 너가 그렇게 했느냐 물어보니깐, 사울도 핑계를 대죠. 백성들이 그렇게 하자고 해서 제가 했나이다. 또 그렇게 핑계를 대요.

사람들은 자기가 지은 이 죄를 하나님과 관계속에서 어떻게 무마 시킬려고 하냐면은 다른 사람핑계, 환경핑계, 하여튼 이런 핑계를 대면서 자기가 하나님께 잘못한 것을 면해 볼려고 자기 양심을 무마시켜볼려고 합리화를 시키는 이런 방식으로 가니깐, 지금 여기서 알수 있는 사실은 무엇인가 하니깐, 지금 아담과 하와 사이에도 문제가 발생 한 것이에요. 지금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떠넘기고 서로 회피하는 이와같은 일이 두사람 사이에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이다음에 아담과 하와가 자식을 낳았을때 가인과 아벨 형제 사이에 어떻게 발전되는가 하니깐, 아예 한 형제가 한형제를 미워해서 시기해서 죽이는 살인으로 까지 금방 발전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좀더 내려가 보면 나중에 야곱집안에서 많은 자식들이 부모를 속이고 형제끼리 미워하고, 완전 집안 자체에 그렇게 그의 말로 자식이 부모를 속이는 형제가 형제를 속이고 죽일려고 하는 이와같은 가족내에 크나큰 비극이 생겨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짓게 된 가장 중요한 첫번째 이 결과는 무엇인가 하면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질뿐 아니라 다른사람과의 이런 사랑과 연합과 조화의 관계가 깨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깨진다는 얘기는 즉각적으로 서로 미워하고 책임을 전가하고, 심지어는 자기이익을 위해서 다른사람을 죽이는 것까지로 발전하게 되는 이와같은 사람과 사람사이에 분열과 다툼과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여러분 이것만 생긴 것이 아니고 이제 하나님이

 

16절을 볼까요?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뭔가 지금 하와에게 온갖 비참한 일이 생기기 시작해요. 그래서 지금 하와에게 생긴 이 비참함이 두가지로 표현되었는데 하나는 뭐에요? 원래는 그렇지 않았을 자식을 낳을때 고통이 있을 거라는 것이고, 남편과의 관계에 지금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그렇게 이 돌로서 예고를 해요.

아담에게도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17절 봅시다.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지금 이 하나님께서 하와와 그리고 아담에게 선고하신 이내용을 보게 되면 지금 하와에게도 아담에게도 비참한 일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요. 그 비참한 하와의 경우에는 주로 가족관계속에서 일어나는 중심으로 되어있는데 원래는 아마도 하나님께서 인간이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자식을 낳는 일이 최고의 기쁨 아니겠어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복을 주셨기 때문에 그렇게 만일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자녀를 낳을때에 해산의 수고, 해산의 진통을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지금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기뻐해야 할 자녀를 출생하는데 있어서, 이 여성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래로 가장 큰 고통을 맛보는 것은 바로 죄의 결과로 찾아온 그런 형벌이라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해 줍니다.

 

나도 아직도 결혼하지 않아서 자녀를 나아보지 못한 우리 자매들은 그걸 피부로 실감하지 않겠죠. 또 남성분들도 아직은 그게 실감나지 않겠죠. 그러나 직접 자녀를 낳아본 우리 자녀분들은 이것이 대단히 큰 두려움이고 고통이라는 것을 아마 체험을 했을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자녀를 낳고 난 다음에 첫번째 가게 되면, 대부분 하는 소리가 목사님 다시는 이제 자식을 안낳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깐 그만큼 그 해산의 고통이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고통중에서 가장 큰 고통을 자녀의 출생을 통해서 맛본다는 것을 우리가 알수가 있어요.

 

그런데 단순한 이 자녀를 낳을 때만이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낳을때만 그렇게 고생이고 낳고난 다음부터는 평생 그자녀가 자기를 낳아준 엄마와 아빠에게 기쁨을 주는 가하면은, 그때부터 자식은 부모에게 뭡니까? 계속적인 바로 가지에 바람잘날 없다고 표현되는 것처럼 늘 자식이 부모의 고통이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또 사고칠까, 어떻게 하면 문제를 안일으킬까, 잘될까하는 늘 자식 염려와 걱정이 마치 예수님 태어날때 마리아에게 칼이 니 마음을 찌르랴  그렇게 예고가 된것처럼 그때 사실 마리아는 예수님이 고난 받는 것 때문에 그의 마음이 칼로 찔리듯이 예수님 때문에 그렇게 고통을 받을 거라는 얘기지만 사실은 모든 어머니들도 자기 자녀들이 늘 어떻게 될까, 노심초사하면서 그 자녀가 사실은 축복이 되기도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자식이 부모에게 고통의 씨앗이 되기도 하는 것이에요. 이런 문제가 우리 죄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상한 말이 하나 기록 되어있죠. 16절 다시 읽어 볼가요?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 보면 이 아내가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아내를 다스린다. 말이 좀 이상하죠? 원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이런 말이에요. 아내가 남편을 뭐할려고 한다는 거냐면 지배할려고 할 것이나, 마음대로 안될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지배를 받을 것이다. 그런 내용이에요. 쉽게 말하면 이게 가정에서 헤게모니 싸움이 일어나는 것을 보여줘요. 원래 하나님께서 에베서 2장에 보게되면 남편은 아내를 자기목숨을 주듯이 그렇게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 대해서 그렇게 온전히 순종하라. 이것이 바로 질서라고 그랬는데 이 질서가 깨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마치 아담에게 죄를 지을때 하와가 앞장서서 먼저 자기가 나서가지고 냉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따먹고, 자기 남편에게 주어서 먹어보라고, 이것은 원래 질서가 깨어진 것이에요. 원래의 바른 질서란 이런 것이겠죠. 원래의 바른 질서란 이래야 되겠죠. 하와가 그 제안을 받아들여도 안되. 먼저 남편에게 물어보고 왜그래야 되는데 되물어보니깐, 아담은 내 머리이기 때문이거든. 내가 물어보고 먹을지 말지 이래야 이상적인 것인데 하와가 이 질서를 깨어요. 깨어서, 마치 자기가 아담의 머리인것처럼 자기가 적극적으로 먼저 행동을 하고, 그렇게 아담에게도 죄를 짓도록 주도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바로 이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를 깨는 것처럼 그 이후에 살아가면서도 이 질서 관계가 깨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사실은 결혼한 다음에 한달이고 일년이고 사실은 바람 잘날이 없죠. 이제 서로 주도권을 쟁취할려고 이거지금 잡히면 안된다 해가지고, 하여튼 결혼한 다음에 서로 누군가 잡힐때까지는 마치 닭장에 닭싸움 하듯이 그렇게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부단히 하다가 집안에 바람 잘날이 없는거죠. 사실 죽을 때까지도 잘 안되는 것이에요. 잡혔는가 했는데 또 튀어나오고 튀어나오고 이렇게 가정에서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것 자체가 사실은 한 가족 관계에서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을 이런식으로 설명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와에게 설명한 이것도 고통이지만, 아담에게는 이 인류의 대표이기 때문에 고통의 범위가 컷어요. 어떻게 컸는가 하니간, 17에 보게되면.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지금 죄는 누가 지었어요? 아담이 지었는데, 무엇이 저주를 받았어요? 땅이 저주를 받아가지고 그렇게 땅자체에서 가시와 엉겅퀴를 그렇게 내는 일이 발생한 것은 왜그런가 하니깐, 바로 아담이 뭐라고 그랬죠? 인류의 대표일 뿐 아니라, 다른 피조물의 대표이니깐, 아담이 지은 죄는 아담이 대표하는 모든 피조물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원래 하나님께서 첫째날 보시기에 좋았더라 둘째날 보시기에 좋았더라 했던 이 자연이 그안에서 저주를 받아서 문제가 생겨나게 된것이죠, 사실은 가뭄, 폭풍 화산 태풍 지진, 해일, 등등의 이와같이 자연속에서 그렇게 많은 일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원래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연환경도 변하지 않았을 그와 같은 것들이 죄를 짓고 난 다음에 발생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이에요.

 

그래서 원래는 그냥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 동산에 먹기 좋고, 보기에 좋은 나무를 만드셨기 때문에 그들이 먹는데 있어서 아무런 수고가 필요가 없는 물론 수고는 하겠지만 그 수고 자체가 힘들지 않고 기쁨인 먹고 사는 것이 즐거움인 일하는 것이 기쁨인 그런 관계에서 이제 아담의 노동도 쉽게 말하면 벌을 받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아담이 이제는 땀을 흘려야 이 겨우 자기와 가족들을 먹여 살릴수 있는 그래서 사는 것이 고달픈 사는 것이 고해인 사는 것이 힘든 그런 인생이 되게 되었다. 그런뜻이에요. 그래서 아담은 자신이 책임지고 먹여살려야될 모든 것들이 이젠 무거운 짐을 지게 되는 온종일 일하고 한달 내내 일해도 그 힘들게 힘들게 힘들게 일할수 밖에 없는 그래도 겨우 입에 풀칠할 수 밖에 없는 이와같은 노동의 수혜가 아담에게 생겼다. 이것이에요.

 

그래서 지금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간략하게 하는 말들인데,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기본적으로 관계가 파괴되고 깨졌음을 그렇게 보여주는 겁니다. 아담과 하와사이에 관계도 그리고 부모와 자식 사이에 관계도 그리고 우리 인간과 자연 사이에 관계도 예전 같지 않아서 이땅에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인간에게 힘겨운 일이 되게 되었다. 온갖 비참한 일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깐 이이야기는 좀더 성경이 쭉 뒤로 넘어가게 되면, 우리 인간들사이에 이것이 규모가 더 커지게 되는 것이에요. 이렇게 아담이 땀흘려 수고해서 먹는 이문제가 확장되게 되면은 무엇을 발전되게 될까요? 가난과 기근이 발생하는 것이고, 또 서로안에 싸우는 이유들이 더 커지게 되면 전쟁이 발생이 되는 것이고, 그리고 그다음에 뒤에 한번 봅시다.

 

19절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결국은 이와같이 질병과 근심과 고통과 인간관계에 파괴와 이런 일들 뿐 아니라 더 한단계 나아가서 무엇을 겪게 될거라는 거죠? 죽게 될것이라는 것이에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것이니라 하시나라는 너가 죽을 것이라는 뜻이에요. 원래 하나님이 창세기에서 아담을 만들때 먼저 흙으로 아담의 몸을 만드시고, 그 아담의 몸에 하나님이 뭘 불어넣었죠? 생기를 불어 넣어서 다른 말로 하면 영혼을 아담의 육에 불어넣어서 아담이 인간이 된 것이에요. 그런데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얘기는 죽을 것이란 얘긴데 죽음이 무엇인가 하니깐, 원래 몸 흙으로 된 몸과 하나님께로부터 직접온 이 영혼이 어떻게 될거라는 것이에요? 분리가 된다는 것이에요. 둘사이가 끈어지게되면 이제 우리몸은 원래 지음을 받았던 흙속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면, 우리는 뭐 심장이 안뜁니다. 뇌파가 정지 했습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말할 수 있겠죠. 그러나 성경적인 가장 중요한 죽음의 정의는 육체의 죽음의 정의는 뭐라고요? 영혼이 우리 몸에서부터 떠나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 호흡도 못하게 되는 것이고, 맥박도 안뛰게 되는 것이고 뇌파더이상 안되는 것이죠. 그래서 신기하게도 방금전까지만해도 모든 신체 기관이 다 작동을 하다가 영혼이 몸을 떠나게 되면 눈은 안보이게 되고 귀는 안들리게 되고 머리는 아무런 기억이나 추측이나 그런 것들을 할 수 가 없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흙으로 돌아가라는 이야기는 니가 육체적인 죽음을 맛보게 될 것이다.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성경이 우리에게 하는 중요한 이야기는 무엇인가 하면, 사람들이 죽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그냥 사람이 태어나서 시간이 오래되면, 옷이 낡아지듯이 기계가 낡아지듯이 자연스럽게 다 모든 기능이 끈나가지고, 그래 죽는 것이 아니에요. 사실 대다수의 사람이 죽는 것이 그렇게 자연적으로 죽기 보다도 어떻게 더 많이 죽어요? 질병으로 죽고 사고로 죽고, 원래 정상적이지 않아요. 그리고 죽는 것 자체가 원래 자연스럽다면, 사람들은 죽음이 가까워 올수록 어떻게 될까요? 죽음을 어떻게 느끼게 될까요? 그게 만약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아주 기쁘고 즐겁고 그냥 이제 자연스럽게 내가 분리 될때가 왔으니깐, 그것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였지만,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가장큰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 것은 자기가 죽을 까봐, 이 죽는 것에 대해서 가장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이 죽음이 정상적이고 자연적인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에요. 오늘 이죽음은 하나님의 뭐라고요? 심판과 저주의 형벌이에요. 그래서 바로 아담이 지은 죄의 결과는 우리가 육체가 죽는 우리의 영혼과 몸이 분리되는 육체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은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렇게 육체가 죽을 뿐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아까, 소교리문답 답변을 다시 볼까요?

 

답 : 인류는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놓여서, 세상에서는 비참하게 살다가 죽고, 지옥에서는 영원히 고통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요즘 많은 연예인들이 어떤 연예인인줄은 모르지만은 뭔가 괴로운 일이 생길때 자살을 함으로써, 육체를 죽임으로써 자기 인생을 마감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들의 생각속에는 내가 죽으면 이 모든 고통이 다 끈나겠지 하는 생각이 있으니깐, 그런 자살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안좋은 방법을 택할 겁니다. 만일 이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자살을 생각하지 않겠죠. 오늘 우리성경은 우리들에게 육체가 죽음으로 끈나는 것이 아니라, 죄값은 영원히 지옥에서 형벌과 고통을 맛보게 된다. 이렇게 우리 가운데 알려주고 있어요.

 

여러분 요즘에 많은 사람들은 너무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이런 심판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기를 싫어해요. 옛날 프랑스에 가장 절대 왕정을 구가 했던 루이왕은 그가 자기궁전에 들어온 사람은 일체 죽음을 입밖에 내지 않도록 그렇게 했다 그래요. 루이 14세 처럼 절대 권력을 가지니깐, 죽는 것이 가장 두려웠던 모양이에요. 어떤 식으로든지 자기 귀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들리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그래요. 그래서 아마 우리는 루이 14세도 아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4자를 다 빼버렸어요. 그냥 숫자 4인데 그게 이상하게 연상이 된다는 것이에요. 숫자 4는 발음이 같으니깐 한자에 사자가 있어서 괜히 4를 보는 순간에 이 죽을사가 연상이 되가지고, 나도 죽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 때문에 아예 4자를 빼버리고 F라고 그렇게 써붙이는 거에요.

 

이게 왜그러냐 하니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죽는 것이 끝이 아니라 죽음 저 건너편에 무서운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사실은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에요.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죄의 결과로서 죽게될 마지막 비참한 것이 영원히 하나님께로부터 고통과 형벌을 받을 그런곳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 해줍니다.

 

한번 우리 구약 성경부터 찾아 볼가요.

 

이사야 66장 24절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지금 여러분 이구절이 이사야서에 어디에 기록되있어요? 맨 마지막 절에 이사야서는 참 신기하게도 그 65장 66장에서 새하늘과 새땅을 이야기 하는 방면, 또 한편에서는 이와같이 무엇을 말해주고 있어요? 영원한 형벌을 말해주고 있는데 영원한 형벌에 대한 표현이 이렇게 되어있어요.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고,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는 영원한 형벌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얘기는 무엇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가 하면, 우리 한번 예레미야 7장 30절을 봅시다.

 

예레미야 7장 30절 - 33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 자손이 나의 눈 앞에 을 행하여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에 그들의 가증한 것을 두어 을 더럽혔으며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에 살랐나니 내가 명령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하지도 아니한 일이니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날이 이르면 이 곳을 도벳이라 하거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말하지 아니하고 죽임의 골짜기라 말하리니 이는 도벳에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했기 때문이니라

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

 

여러분, 여기에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는 것이 나오죠. 이게 뭔가하니깐, 성경에서 지옥을 설명할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이 삶속에서 경험하는 한 장소를 택하여, 그것을 지옥에대한 그림자로 그렇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에요. 예루살렘 남서쪽에 골짜기가 하나있는데 그이름이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는 곳이에요. 근데 이골짜기는 예루살렘의 쓰레기들을 거기다가 갖다 버리는 것이에요. 쓰레기들을 버려서 쓰레기 썩는 냄새가 나고 쓰레기를 태우는 냄세가 거기에서 나오게 되요. 거기에서 심지어는 이스라엘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는가 하니깐, 거기에 자기 자식을 불에 태워서 바치는 자기 자식을 불태우는 그런 일들도 그 골짜기에 일어나게 됬어요. 지금 여기에 예언 된 것은 하나님의 전쟁에서 심판을 받은 그 시체들이 바로 버림 받는 곳이 바로 힌놈의 아들 골짜기라는 곳이에요. 그래서 이 전쟁에서 심판받아 죽을 사람들이 그 골짜기에 던져지게 될때 거기 누가 와서 쪼아 먹는 다고요? 지금 공중의 새들과 들의 짐승들이 와서 그 사지가 짤려있고, 썩어들어가는 그 시체를 파먹고, 쪼아먹는 그와같이 끔찍한 장면, 그니깐, 아마 이 지상에서 가장 더럽고 추하고 우리가 생각하기도 싫은 그런 장소가 있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무슨 골짜기라고요? 힌놈의 아들골짜기가 온갖 쓰레기 썩는 냄새 타는 냄새 심지어는 시체가 썩고 타고, 불이 타올라서 연기가 그렇게 올라오는 그곳은 가장 저주받은 가장 끔찍한 그런 곳이 바로 힌놈의 아들 힌놈의 아들 골짜기라고 하는 그런 장소인데,

 

신약성경에서 지옥이라고 말할때 게헨나 라고 말하는 이것이 바로 힌놈의 아들 골짜기를 가리키는 표현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이것은 하나의 비유에요. 무슨 말인가 하니깐 우리가 이세상에서 경치가 아주 좋은 곳에 갈때 아름답게 꽃이 피어있고, 열매가 맺혀있고, 새가 우짖고 나비가 날라다니고, 맑은 물이 흐르는 그런 곳을 볼때 마치 여기가 천국 같다고 느끼는 것처럼 정반대를 생각해보세요. 가장 끔찍하고 저주스럽고 불결하고 더럽고, 그런 장소가 바로 이스라엘로 치면 힌놈의 아들 골짜기라는 곳이 될거에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죄를 짓고 구원받지 못했을 때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바로 이런 곳에 영원히 들어가 고통을 받게 될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분은 예수님이에요.

 

우리 신약 성경을 한번 찾아 봅시다.

 

마태복음 13장을 보겠습니다. 

 

앞으로 예수님 재림할때에 심판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때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것을 마태복음 13장 40절부터 42절까지 우리함께 읽읍시다.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이거 누가 하신 말씀이라고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예수님께서 하나님 믿지 않고 죄를 가지고 그대로 있는 사람들이 종말에 다 거두어져서 풀무불 속에 던짐을 받을 것이다 라고 말할때 지금 이 풀무불은 구약성경에 무엇을 연상시키는 가 하니깐, 뭐죠?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시체를 태우는 그 불길을 연상하는 그런 것이고, 아까 이사야 서에서도 그곳은 어떤 곳이라고 하죠. 구더기도 벌레도 죽지않고, 그 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그런 불속에 던짐을 받을 것이다. 누가요? 누가 그렇다는 거죠? 41절에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 다른 말로 하면 아담의 죄를 그대로 물려 받아서 구원 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주님 오시는 그날에 마지막 형벌을 받는데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죽는 것으로 끈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속에 던짐을 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 께서 직접 그렇게 말씀했어요.

 

우리한번 마태복음 25장 41절도 봅시다.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에 들어가라

 

지금 이 배경도 예수님 재림 할때에 양과 염소라고 분류되는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심판할때 지금 염소로 분류되는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장면인데요.

 

원래 이 영원한 불은 누구를  위해 예비 되었다구요? 사단과 귀신들을 위해 예비된 곳인데 그들을 따른 그들도 죄인들도 바로 영원한 불속에 들어가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이런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에요.

 

우리 한번더 좀더 보기 위해서 한구절만 더 보겠습니다.

 

마가복음 9장 48절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이게 원래 구약성경 어디있었던 말씀이죠? 이사야 66장 마지막 절에 있었던 말씀을 예수님 그대로 인용하시면서 이사야가 말한 그것이 그대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사야가 말한 그 불이 사실은 무슨 불을 가리키는 것이에요? 영원한 지옥불을 상징하는 것을 예수님이 직접 그렇게 확증해 주면서 이사야가 말한 그 꺼지지 않는 불이란 바로 불신자들이 영원히 심판을 받게 될 지옥불을 가리키는 것이다 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지금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불구덩이 속에 불속에 던져지는 것으로 이렇게 묘사를 하는데 또다른 곳에서 예수님은 다른 식의 비유를 사용해요. 언어를 사용해요.

 

마태복음 8장 12절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이번에는 어떤 곳이라고 하죠 지옥을? 어두운 곳이라고 어두운 곳에 캄캄한 곳에 던짐을 받게 될 것이다.

조금 넘겨서 마태복음 22장 13절을 보겠습니다.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똑같은 얘기죠, 바깥 어두운 곳에 던져서 거기에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갈미 있으리라.

 

마태복음 25장 30절

 

이 무익한 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지금 예수님이 한두번 말씀하신 것이 아니에요. 계속 반복적으로 이렇게 최후의 받게 되는 형벌은 마치 무엇 같은것인가 하니깐, 아주 캄캄한 곳으로 던지움을 받는 것처럼 그렇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지옥이 불로설명되지 않고 아주 어두운 곳으로 아주 캄캄한 곳으로 그렇게 은유적으로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 하니깐, 이 고통스럽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에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이죠.

 

누가복음 16장 23절 24절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을 찍어 내 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지금 이 계속 읽어보면 이 부자가 하는 얘기를 볼때 어떤 상태에 있다고요? 고통중에 있다고 얘기를 해요. 심지어는 그 고통이 얼마나 큰가 하니깐, 아마도 이 나사로의 손끝에 물한방울이라도 찍어서 네 혀끝에 대어달라는 얘기는 지금 이곳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에요? 굉장히 뜨거운 곳이라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어요. 아까 예수님이 말한 영원한 불의 던지움을 받을 것이다. 풀무불에 던짐을 받을 것이다. 꺼지지 않는 불에 던짐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로 그곳에 지금 들어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실 이 손가락 끝에 있는 물한 방울이 그에게 가장 기달려지는 오직 소원이란 것이 그거 한방울 그렇게 입을 찍어바르는 것이 그의 전체 소원이랄 정도로 그렇게 지금 고통스럽게 지내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지금 말해주고 있는 그런 장면이에요. 그래도 예수님은 사람들이 이땅에 살면서 가장 피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뭘가요? 이와같이 죽은 이후에 영원한 꺼지지 않는 불, 그리고 때로는 어두움이라고 표현된 이런 곳에서 영원히 고통 받고 심판 받는 곳이 있다면 우리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중요한 일은 무엇이겠어요? 바로 여기를 피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마태복음 10장 28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28. 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여러분, 이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보면 어떤일을 겪을 수 있다는 거죠? 외국에 있는 왕들과 그런 이방인들의 관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잡아다가 뭐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육체를 죽이려고 할 때가 있을 거라는 거에요. 우리가 그런말을 흔히 다른 말로 뭐라고 하죠? 순교를 당할 수 가 있을 것인데, 그때에 그것을 두려워 하지 말라는 것이에요. 사실 우리가 이땅에 살면서 우리가 몸이 죽임당하는 그걸 최고로 무서워 하고 두려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너희가 그렇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라. 왜? 우리의 몸이 죽임당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 했을 까요? 그건 아무런 문제가 안되고 정말 무서워 해야 될것이 뭐라는 겁니까? 우리의 몸과 영혼이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가는 것이야 말로 그걸 두려워 해야지 우리가 잠시 우리의 육체가 죽는 것 가지고 두려워 해선 안된다.

이 비교를 통해서 우리 인간에게 가장 끔찍하고 무서운 것은 육체가 죽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영혼이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그렇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절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8장 8절-9절

 

그래서 우리가 이 지옥들어가는 것이 죄와 연결 되었기 때문에 죄를 피하여야 하는데 어떤 마음가지고 피해야 되는지 마태복음 18장 8절 9절을 이렇게 기록 하고 있어요.

 

만일 네 손이나 네 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을 가지고 영원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을 가지고 지옥 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러분 이 내용을 잘 보세요. 이걸 잘못 문자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큰일 날 수 있어요. 우리가 손으로 죄를 지었어요. 근데 예수님 말씀이 너 죄지은 손을 어떻게 하라고요? 잘라내라. 왜냐하면, 죄짓고 달고 댕기는 이손가지고 지옥 가는 것 보다는 죄 지은 손을 잘라내고 지옥에 안들어가고 천국 들어가는 것이 낳다. 우리가 눈으로 죄를 지었을때 눈을 다 뽑아내라. 이 멀쩡한 눈가지고 지옥 들어가는 것보다는 눈을 뽑아 내더라도 지옥에 안들어가는 것이 낫다.

 

그러니깐, 이런 표현을 뭐라 그러는 가 하면, 실제로 예수믿는 사람들 보고 진짜 문자적으로 팔을 끈어내고 눈뽑아 내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그러면 여러분 중에서 저와함께 두손 달릴사람 있을가요? 한사람도 없어요. 눈 두개 달고 올사람 있겠어요? 한사람도 없어요. 지금 이게 문자적으로 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대조해주고있는 것이에요.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우리가 이땅에 살때 성도로서 마치 죄를 짓는 것을 어느정도 피해야 되는가 하니깐, 죄를 지을때 손을 잘라낼 각오처럼 그렇게 결심을 하고 죄를 안짓기 위해서 노력하라는 얘기지 실제로 손을 잘라내고 눈을 뽑으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그러나 알수 있는 사실은 뭔가 하니깐,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이 죄의 결과로 떨어지는 것인데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참으로 무서워하고 두려워 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지금 시간이 많이 갔기 때문에 이정도로 읽고 말려고해요. 시간만 있었으면 더 많이 읽고 싶은 데

특히 오늘 제가 짧은 시간동안에 읽은 구절들은 누구의 말씀을 제가 지금 읽었어요? 예수님 말씀을 읽은 것이죠. 지금까지 인류가 아담이래로 살아오는 동안에 이 지옥에 대해서 가장 많은 말씀을 하신 분이 누굴 까요? 예수님이에요. 성경 전체에서도 바울보다 베드로 보다 누가 보다 그 누구 보다도 바로 이 지옥의 무서움에 대해서 지옥의 형벌에 대해서 거기에 들어가면 안된다는 것에 대해서 지옥을 피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가장 강도 높게 가장 열정적으로 반복해 가르키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해주는 가 하니깐, 바로 예수님이 지옥에 대해서 가장 잘 아시는 분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죄의 형벌이 얼마나 무서운가 하니깐, 지금 현재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과의 교제가 끈어지고, 우리가 질병좀 걸리고 가난해지고, 전쟁에 들어가게 되고 이런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심지어 우리의 육체가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이 지옥불에서 영원토록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 바로 죄의 궁극적인 결과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에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영원한 지옥에 대해서 설명하면 대게 2가지가 계속해 반복해서 하나는 뭐죠? 그것이 꺼지지 않는 불이라는 것과, 또하나는? 아주 어둡고 캄캄한 곳이라는 이 2가지를 사용해서 설명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니깐, 이 둘인 우리 육체의 고통을 가장 극대화 할 수 있도록 그렇게 말해주는 비유에요.

 

사실 우리가 이렇게 몸을 가지고 살아있는 동안에 이 몸은 괴롭힘을 당할 수 있죠. 밥을 먹지 못해도 괴롭고, 길가다가 다리를 삐어도 괴롭고, 심지어 바느질 하다가 손에 찔려도 괴롭지만 이 육체를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뭘까요? 우리가 한번 불속에 손을 넣어가지고 화상을 그렇게 입거나, 완전히 어떤 사람들 보게 되면 눈에 불을 끼얹어 가지고 분신하는 소수가 있는데 완전히 타기 까지의 그 불탄 몸을 가지고 당하는 고통은 아마도 육체가 경험할 수 있는 최상의 고통일 것이에요. 그래서 지옥을 설명할때 쉽게 이런뜻이에요.

 

그곳은 엄청나게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달리 말로 표현할 길이 없으니깐,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은 바로 불에 손을 넣어가지고 뜨겁게 데인 경험 혹은 불속에 던져지는 그 자체가 가장 큰 고통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받는 영원한 지옥은 불속에 던짐을 당한 것 같은  그러한 고통이 될것이다 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꺼지지 않는다. 영원한 불이다. 풀무불이다.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한가지 물론 불이 활활 타오르는게 문자적이라면 불이 활활 타니깐 거긴 어두울리가 없겠죠. 불이라는 게 연탄불 가스불 이런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우리 육체가 고통을 받는 다는 것에 대한 이런 은유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그래서 또 다른 한면으로서 어둡다는 것은 우리가 살다가 어릴때 경험해 봤듯이 지금은 전깃불이 너무 많아서 사실 어두움을 경험해볼 때가 없어요. 어쩌다가 전기라도 나가야 한번 경헙해 보지 낮이고 밤이고 밝기 때문에 어두움을 경험할 일이 없는데 저처럼 시골에 살았던 사람은 화장실이 집밖에 있었기 때문에 제일 힘든것이 밤에 화장실 가는 거에요. 화장실까지 가는 길이 좀 어두워가지고 아주 무서운 것이에요. 그래서 이 어둡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니깐, 이 어두움 속에 들어가게 되면 바로 옆에 있어도 옆에 뭐가 있는지를 알수 없을 정도록 뭐가 느껴지는 것이에요? 굉장한 고독감과 격리를 말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어두움 속에 던진다는 것은 아무도 없는 캄캄한 곳에 한사람만 던진다고 생각해보세요. 아무도 없는 곳에 그 어두운 곳에 자기 혼자만 있다고 생각 될때에 그 격리감 그 외로움 하나님으로 부터 끈어질 뿐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부터 끈어진 그와 같은 상태가 바로 무엇으로 표현 되는가 하니깐, 어두움속에 던져진다는 말로 그렇게 설명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사실은 이 지상에서 이 지옥을 연상시키는 것이 있다면 오늘날에는 난지도와 같은 쓰레기장이 아니라, 이세상에서 가장 지옥을 상기 시켜주는 그런 장소는 어딜까요? 감옥이에요. 그래서 감옥 자체가 이 두가지를 다 말해주고 있는데 감옥에 가두는 것은 사람으로 부터 뭐하기 위한 곳이죠? 격리 시키기 위해서 아주 그로 하여금 다른 모든 관계에서 끈어가지고 그렇게 고통을 주는 방법이 감옥속에 가두는 것이에요. 그리고 감옥속에서도 그사람에게 더욱 특별한 행동을 주고 싶을 때는 다른 죄수들과 함께 넣지 않고 독방에 다가 가두는 것은 감옥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감옥이에요. 독방에 넣는 것 자체가. 바로 어둠 속에 넣는 다는 것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 가 하면, 아까 봣죠. 죄 자체가 누구와의 관계를 끊어 버렸어요? 하나님과의 관계도 끈어버리고 다른 이웃과의 관계도 끈어버리니깐, 오로지 자기만 오로지 이기적으로 오로지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그 결과가 이 처럼 모든 하나님께서 만들어준 관계로부터 끈어짐과 격리와 그 고독함과 외로움과 괴로움을 상징해주는 것은 어두움 속에 홀로 갇혀 있는 그와 같은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묘사해 주는 것이에요. 그러니깐, 이 두가지를 결합시켜 보면, 우리가 다른 말론 할 수가 없지만, 앞으로 영원한 지옥은 어떠한 곳인가 하니깐, 그 고통 자체가 가장 클것이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고통이 가장 큰상태에서도 가장 큰 외로움과 고독함을 맛볼수 밖에 없는 그런 무서운 곳이 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운데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걸 누가 말씀하셨다고요?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니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고를 해 주었어요. 그래서 아담에게 니가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따먹는 날에는 니가 정녕 죽으리라한 이야기가 사실은 3단계가 그속에 다있는 것인데, 가장 먼저는 아담과 하와의 영혼이 하나님으로 부터 분리되는 이것을 우리는 영혼의 죽음이라 할 수 가 있겠고, 영혼의 죽음에 이어서 무엇이 죽는 다구요? 우리의 육체가 영혼으로 부터 분리되는 것도 또한 죽음이 될 것이고,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나중에 우리의 몸과 영혼이 영원히 지옥에 던져지는 것이 그것이 바로 둘째 죽음이고 영원한 죽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 이구절만 봅시다.

 

요한 계시록 20장을 보겠습니다.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여러분 영원한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을 성경은 뭐라 부르고 있어요? 죽음이라 표현하는데 무슨 죽음이라고요? 둘째 죽음이다. 첫째죽음은 뭘가르키는 것일까요? 우리 육체가 죽는 것을 첫째 죽음이라면, 우리의 몸과 영혼이 영원히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 자체는 둘째 죽음인데 이 둘째 죽음은 어떤 죽음이에요? 영원한 죽음이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죽음이라는 것 자체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가리키지 않고 하나님으로 부터 벌받는 영원히 벌받는 상태를 무엇이라고 표현하는가 하니깐, 죽음이라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짧은 시간에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값으로 어떤 형벌을 받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를 바로 이 죄와 죽음으로 부터 건지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받을 형벌이 얼마나 컫기에 사실은 다른 문제로는 해결이 안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지은죄가 가볍다 그러면 죄를 용서해주는데 들어가는 비용도 작게 들어가겠죠. 그런데 우리를 구원 하기 위해서 누가 동원됬는가 하니깐, 하나님의 아들이 그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인간이 되어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어야만 우리의 죄와 우리의 죽음이 해결될 정도라는 것은 우리가 지은 죄값이 얼마나 무섭고 크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 받게 된 것은 단순히 마음에 평안을 좀 찾는 것 우리 몸에 건강이 회복되는 것 이런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구원하셨다는 이야기는 우리를 어디에서 건졌어요? 하나님과의 끈어진 관계로부터도 건지시고 하나님의 저주로 부터도 우리를 건지시고, 우리를 무엇으로 부터 이땅에서도 점차적으로 하나님믿음으로 기쁨을 회복하고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 우리가 영생을 얻어서 영원히 지옥에 들어가지 않고 영생얻어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는 두부류의 분이 계실 것이에요. 하나는 뭔가하면은 이미 예수님을 믿어서 이죄를 용서받은 분들이 계세요. 그런분들에게는 더이상 정죄함이 없는데 그 정죄함이 없다는 것은 바로 그에게 육체가 죽을 지언정, 그가 영원한 불못에 던지우는 것을 하나님께서 면해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이 되면은 어디에 안던져 진다구요? 영원한 지옥불에 던져지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구원받은 사람은 여러분이 받은 구원의 깊이 얼마나 깊은지를 봐야 되는 것이에요. 지옥에 내려가있던, 사실은 그냥 두면은 영원한 지옥불에 있을 여러분을 건지시는 것이 그게 바로 예수님이 여러분을 건져주신 것이에요. 그러니깐, 이 지옥에 고통속에서 건진다는 것이 구원이라면, 이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이땅에 살아갈때 당하는 것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죠? 자기 육체가 죽는 것인데, 그 육체의 죽음도 내가 받은 이 구원의 기쁨에서 자기를 막을 수가 없는 것이에요. 아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심지어 다른 예수 안믿는 사람들이 너희를 예수믿는 다고 해서 몸을 죽인다고 죽일 지언정 뭘하라는 것이에요? 사실은 기뻐뛸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왜?  이미 이 지옥에 형벌로 부터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이 세상을 살면서 당하는 작은 그런 고통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엄청난 구원을 이미 받은 것이라 그것이에요. 그래서 내가 받은 구원이 영원한 지옥으로 부터 구원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예수믿고 난 다음에 어떤 어려움이나 역경이나 심지어 죽을 병에 걸렸다 할지라도, 심지어 순교를 당한다 할지라도, 그자체가 아무런 자기의 기쁨을 막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에게 그리스안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감사하되, 몸건강하면 감사하고 돈잘벌면 감사하고 이런게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란 얘기는 건강할때도 감사하고 아플때도 감사하는 것이고 일이 잘풀릴때도 감사하고 안풀릴때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어떤 구원이라고요? 영원한 지옥의 고통으로 부터 구원 받은 것이니깐, 이세상에서 천국 갈때 까지 당하는 작은 어려움들은 넉넉히 이길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무엇조차도 우리의 믿음을 빼앗을 수 없어요? 심지어 죽음조차도 빼앗을 수가 없는데, 죽음은 구원받지 못했다면 육체의 죽음은 어디로 들어가는 문일 까요?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이지만, 이제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육체의 죽음이 어디로 가는 문일 까요? 천국으로 가는 문이 되기 때문에 예수믿는 사람들에게는 육체의 죽음 조차도 더이상 위험이 될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있느냐? 나에게 이김을 주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를 하는 도다. 이렇게 할 수가 잇는 것은 바로 우리를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건짐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 육체의 죽음은 이제 지옥가는 문이 아니라 천국 가는 문으로 바꼈습니다. 그래서 예수믿는 사람들에게 더이상 두려워 하거나 더이상 불편해 하거나 더이상 어려워 하거나 할 것이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가난이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온갖것들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끈을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나 아직 이자리에 계신 분중에서 예수님을 확실하게 믿어 여러분의 죄를 고백하고 아직도 구원 받은 것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들은 여러분이 목표로 삼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슨 이세상에서 콩클 대회 나가서 우승을 하는 것, 연예인이 되어서 이름을 날리는것, 혹은 고시에 패스해서 안정된 직장을 얻는 것 이런것이 여러분의 인생에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가 없어요.

 

여러분이 가장 먼저 우선적으로 힘써야 할 것은 바로 이 지옥의 불로부터 도망쳐 나와야 하는 것이에요. 이지옥의 불길로 부터 피해 나와야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나라로 들어갈려고 힘써야 되는 것이에요.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것이고, 우리 대신에 지옥의 쓴잔을 지옥의 불을 지옥의 어두움을 예수님께서 대신 맛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께로 피하는 길이 바로 지옥의 불길로 부터 피하는 길입니다. 그것이 바로 가장 안전한 여러분의 피난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소교리 문답 19번을 통해서 우리가 지은 죄에 그 피해가 비참이 얼마나 깊은가 하는 것을 우리가 다시한번 깨달아야 하고,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얼마나 큰 비참으로 부터 구원을 받은 것인가 하는 것을 다시한번 돌아봐야 겠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소교리 문답은 우리가 구원 받았을때 어떤일이 일어나는 가를 계속 공부하겠지만 오늘 이 19번은 사람들이 죄를 지었을때 발생하게된 결과 얼마나 비참하다는 것을 함께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시고, 아직도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은 바로 이큰 구원을 얻기 위해서 여러분이 부지런히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해야 합니다.